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비교
- 최초 등록일
- 2015.04.17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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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 ․ 분석
1. 편찬 배경 및 과정
2. 내용 및 서술방법
3. 사관 및 역사적 의식
4. 사학사적 가치와 한계
Ⅲ. 맺음말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일연(一然)이 1280년경에 편찬한 삼국유사는 김부식이 1145년(인종23년)에 편찬한 삼국사기에서 누락된 내용, 이를테면 불교적 사실을 주종으로 하고 고조선에서 발원하는 삼국 이전의 역사와 이설(異說)을 부가해서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가 유교사관에 입각한 기전체(紀傳體) 정사(正史)라면 삼국유사는 불교사관에 의한 편년체(編年體) 야사(野史)인 점에서 고대사를 기록한 사서로 쌍벽을 이루면서도 양자는 상호보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대립적인 관계이다. 삼국사기가 유교적 합리주의와 인본주의에 의해 공자가 일찍이 주창한 ‘술이부작(述而不作)’의 태도를 고수한 데 반해 삼국유사는 불교적 초월주의 내지는 신화적 종교적 세계관에 의해 세속계(人間)와 신성계(神佛)가 접한한 사건을 중시했다. 그리고 불교적인 신비체험단의 고형(古形)이나 원형(原型)으로서의 토착적이고 무문화적인 신이담(神異譚)의 가치를 인정하여 기이편(紀異篇)에 집대성했다.
<중 략>
전술했듯이 『삼국사기』는 독창적인 창작물이 아니라 국가의 주도하에서 편찬된 책이다. 때문에 『삼국사기』의 지(志)의 서론, 그리고 열전의 인물평가 등과 논찬 등을 통해 그의 역사관을 찾을 수밖에 없다. 김부식은 문벌귀족의 역사가로 전통적인 기층문화와 체질이 다른 유교주의 사관과 중국 중심의 사대적 사고방식에 의해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그러나 이뿐만 아니라 역사의 독자성을 고려한 현실주의적 입장도 함께 보이고 있다. 이것은 당시 거란 및 여진과 전쟁한 뒤라서 강력한 국가의식이 대두된 시기임을 말해준다. 이러한 『삼국사기』의 자아의식은 열전에 나타난, 순국한 인물의 투철한 국가의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열전에 등장한 69명 중에서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이 21명이었고, 34명이 통일전쟁에서 활약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지 유교정치 이념의 실현만이 아니라 국가의식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김영주,『삼국유사와 문화코드』, 일지사, 2009.
박진태,『삼국유사의 종합적 연구』, 도서출판 박이정, 2002.
신형식,『한국사학사』, 삼영사, 1999.
조동걸 외 2인,『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상』, 창작과 비평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