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사상에 대한 이해
- 최초 등록일
- 2015.04.17
- 최종 저작일
-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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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계몽사상의 대두
2. 계몽사상가
본문내용
퇴행을 부정하고 진보만을 지향하였던 합리주의와 계몽주의는 17세기, 18세기 서부유럽 지성사 움직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성(ratio)에 따라 세계는 창조되었고 그 규율 역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기본적 입장이었다. 이제 문화의 모든 영역은 이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자연법 역시 기존의 국가질서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 당시 사람들은 자연법을 신이 초기에 만든 것으로 간주하였다. 아울러 이들은 낙천적인 진보를 믿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신, 국가, 그리고 사회의 새로운 상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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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는 볼테르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정치사상을 제시하였다. 그는 정치학을 순수한 연역보다는 아리스토텔레서의 연구방법처럼 과거에 실존했던 정치체제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하였다. 따라서 그는 자연법의 의미를 역사적 사실 속에서 찾고자 하였다. 아울러 그는 만인에게 적합한 유일하고, 완전무결한 정부가 있다는 가정을 거부하면서 각 정치제도는 각기 고유의 외부 조건, 즉 국가의 사회적 발전수준 및 국토 규모와 조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그는 전제정(despotism)은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에 적당하며, 제한군주제(limited monarchy)는 적절한 크기의 국가에, 그리고 공화정(republican government)은 작은 영토를 가진 나라에 적합하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중 략>
이 당시 계몽사상가들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자연법칙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시도를 펼친 대표적 인물로는 케네(F.Quesnay: 1694-1774)를 들 수 있다. 중농주의자였던 케네는 상업과 공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정부가 취하는 일련의 특혜조치를 강력히 비난하였다. 케네는 재부의 원천이 금이나 화폐가 아니라 토지와 농업이라는 자연적 재부관을 피력하였다. 이어 그는 인위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국가가 국민의 경제생활을 간섭할 것이 아니라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게끔 자유방임(laissez-faire)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즉 그는 수요와 공급 및 가격을 자연의 추세에 위임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