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으로 떠나는 사연, 수원 화성
- 최초 등록일
- 2015.03.28
- 최종 저작일
-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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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에 대한 재미있고 유익한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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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시대 마지막으로 축조된 수원 화성(華城)은 조선왕조 성곽의 꽃이라 불린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인 1796년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에 의해 완성된 화성은 우리나라 성곽 건축 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성곽과 행궁을 비롯한 50여개 시설물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성곽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을 이루고 있다.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한 우리나라 성곽의 백미이자 조상의 지혜와 얼이 담긴 수원 화성으로 기행을 떠나보자.
화성은 경기도 수원시의 팔달산을 끼고 낮은 구릉의 평지를 따라 쌓은 평산성이다. 대부분 성곽이 군사방어를 목적으로 지어진 것과는 다르게 화성은 정조의 효심과 꿈이 가장 큰 축조배경이다. 화성이 만들어지기 34년 전인 1762년(영조 37년) 열한 살의 정조는 친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비극을 목격하게 됐다.
<중 략>
수원 서쪽의 팔달산 정상에서 길게 이어져 내려와 크게 타원을 그리면서 도시 중심부를 감싸는 형태로 쌓은 화성은 이전의 성곽축성에는 없었던 새롭고 독창적인 건축술을 사용했다. 거중기와 녹로 등 새로운 과학기기를 이용해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축성을 했으며, 총포류의 공용화기 사용을 고려한 근대적 방어 구조에 따라 ‘공심돈’ 같은 각종 방어시설들을 갖추었다. 특히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석재와 벽돌을 혼합한 성벽을 쌓아 세련된 외관의 색다른 구조물을 창출해 냈는데, 우리나라 건축조형의 범위를 한 단계 넓힌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수원 화성에는 모두 48개의 시설물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41개만이 남아있다. 그중 창룡문·장안문·화서문·팔달문의 4대문은 치밀하게 설계된 성문으로써 건축미가 뛰어나다. 화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또 다른 가치는 당시 공사내용을 자세히 기록한 종합보고서 성격의 ‘화성성역의궤’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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