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튼우즈체제 이후의 국제통화체제
- 최초 등록일
- 2015.03.28
- 최종 저작일
-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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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초과유동성의 문제
Ⅱ. 특별인출권의 역할증대 문제
Ⅲ. 다자간 운영체제의 발전과정
Ⅳ. 1990년대 국제통화체제의 과제
Ⅴ. 유로(EURO)화의 출범과 국제통화체제
Ⅵ. 일본 엔(yen)화의 국제화 추진
본문내용
국제통화질서에 대한 킹스턴 개혁이 발효되기 시작한 1978년 이후, 즉 브레튼 우즈체제 이후의 국제통화관계는 금, 달러화 및 특별인출권(SDR)의 국제적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브레튼 우즈체제와는 많은 점에서 상이하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통화체제를 일방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지배적 통화강대국이 없는 상황하에서 국제통화질서는 더욱 무질서하고 예측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1970년대의 2차에 걸친 석유파동은 위의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산유국과 비산유국간의 국제수지균형을 더욱 악화시켜 국제통화의 불안정을 심화시켜 왔다. 이제 브레튼 우즈 국제통화체제 이후의 국제통화질서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I. 초과유동성의 문제
1970년대 후반의 국제통화질서는 국제유동성(international liquidity)의 극적인 팽창으로 특정지어진다고 할 수 있다. 1970년에 1, 280억 달러였던 국제준비(international reserves)가 1980년 5월에는 무려 7, 380억 달러로 확대되어 거의 6배에 가까운 증가율을 나타내었다.28) 이는 국제준비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던 금의 수량은 동 기간 중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으나 국제금가의 상승으로 동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였고, 또한 1970년대 미국의 지속적인 국제수지적자로 달러화의 대량 해외방출에 의한 외환형태의 국제준비가 대폭 증액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29) 뿐만 아니라 주로 유럽통화시장(European currency market)에서 민간은행에 의한 대정부차관이 성행하여 국제유동성의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구주통화시장은 1971년에 불과 850억 달러의 자산이 1979년에는 주로 중동의 석유달러(petro-dollar)가 몰려 무려 6,000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물론 석유수입국들의 막대한 국제수지적자를 메우기 위한 재원으로 이를 재순환하기는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국제유동성의 정창을 가져왔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