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민족정체성(역사, 종교, 언어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5.03.27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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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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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Ⅱ-1. 역사적 정체성
Ⅱ-2. 종교적 정체성
Ⅱ-3. 언어적 정체성
Ⅱ-4. 현재의 우크라이나
Ⅲ. 결론
본문내용
우크라이나란 말의 유래를 알아보면 변경지대, 국경지대를 의미하는 오크라이나(Okraina)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키예프 루시 때부터 써왔다고 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민족들이 처음부터 우크라이나 민족이라 자칭하지 않았다. 키예프 루시 시기부터 자신들을 줄곧 ‘루스(Rus)인’이라 불렀다. 그러나 폴란드 지배 시기에 폴란드 민족과 구별을 위한 것과 표트르 1세 때 ‘루스 인들의 땅(Russ+ia)’으로 제정하면서 사뭇 비슷한 민족으로 인식이 될 것을 우려한 것, 이 두 가지 이유로 ‘우크라이나’로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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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국가를 이룬 건 키예프 루시 공국이다. 882년경에 건국하였다. 키예프 루시 공국이 건국하기까지 오래 걸린 이유는 지형이 산이 없거나 비교적 낮은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유목민들의 왕래가 잦은 탓에 국경을 긋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키예프(Kyiv)란 이름의 유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 키예프 땅에 교회가 번성할 것이라 예견하고 번영을 빌었고, 이를 계기로 그곳에 도시를 세워 번영을 주도한 사람이 키이(Kyi)이기 때문에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명(地名)으로 지었다. 키예프 루시 공국은 연방국가로 여러 집단이 연합을 결성하여 만들어진 하나의 국가이다. 한편, 이 키예프 루시 공국은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3국가 역사의 출발점이 되는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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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보흐단 흐멜린스키는 반(反) 폴란드적인 헤트만으로 온갖 전투에서 승승장구했던 수장이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폴란드와의 전투에서 열세를 띄게 되자 모스크바 제국에 가서 군사적으로 협조를 하는 대신 자신이 이끌던 우크라이나 민족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가 와전되어 러시아 제국의 하급 계층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페레야슬라브 협약이다. 러시아 제국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우크라이나 민족은 흐멜린스키를 좋아하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 지폐에 그려진 인물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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