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근대사 요약과제 - 제 1,2차 중영전쟁
- 최초 등록일
- 2015.03.24
- 최종 저작일
- 2014.05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중국 근대사의 기점을 제 1차 중영 전쟁으로 잡는 것에 동·서양 학자들 사이에 일치되었지만 최근에 명·청 교체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시각도 강하게 제시되고 있다. 이는 중국 근대사의 내용과 특질을 무엇으로 보느냐와 관련된다. 제 1차 중영전쟁을 기점으로 잡을 경우 서양학자는 서구의 충격으로 전통적 중국이 비로소 정체 상태에서 깨어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국제적 고립상태에서 벗어났다고 본다. 그러나 중국학자들은 이 때부터 제국주의 침략사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처럼 중영 전쟁이 기점이 되지만 서구의 충격의 역할에 대해서는 서로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명·청 교체기를 근대사의 기점으로 잡는 경우 이 시기 자본주의 맹아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기도 하고, 서양 학문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을 중시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외인보다는 내인을 훨씬 중요하게 본다.
사실 중국 근대사의 연구는 20세기 초 서양 측 자료에만 의존한 외교관계사에 집중 되었으며 대부분의 서구 학자들은 중국은 서구의 충격이 없었다면 계속 정체하고 있었거나 전통안에서의 변화만 가능하지 변혁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 예상 하였다. 이러한 충격과 반응론이나 근대화론이나 서구를 절대 선으로 전제한 서구 중심적 이론을 바탕으로 본 중국사는 매우 왜곡되어 온 것이다.
제 1차 중영전쟁의 충격을 이들 서구인들과는 달리 제국주의 침략의 개시로 보는 시각도 내인 중시론 자들의 눈으로 보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제국주의 역할의 축소경향과 관련하여 결국은 서양인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교묘한 지적 위장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새로운 편견속으로 타락할 가능성도 있지만, 기존의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을 새로운 시도임에는 확실하다. 그렇다고 제 1차 중영전쟁이 마땅히 받아야 할 평가의 의미가 축소될 수는 없다. 내인은 변화의 근거이며 외인은 변화의 조건이라 규정할 수 없을 지라도 청조 사회의 내적 변화 추세와 이 서구의 충격을 아울러 살피는 것은 그 관건이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