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중간고사 요약정리
- 최초 등록일
- 2015.02.10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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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려사:
고려 말 이제현, 안축, 이인복 등이 <국사>를 편찬하였는데 본기의 내용은 없고 본기 말미에 적힌 사찬만 전해지고 있었다.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는 정도전 등에게 고려사를 편찬하라 하였고, 태조4년 그들에 의해 37권의 <고려국사>가 편찬되었다. 그러나 <고려국사>가 단시일에 편찬되었고, 개국공신들의 주관이 개입되었다고 비판을 받았다. 더욱이 태종 대에도 역시 조선건국과정에 대한 서술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비판받다가 세종 대에 들어 <고려국사> 내 공민왕 이후 기사에 대한 오류가 있음이 지적되었다. 세종은 이러한 오류를 고치고 고려 당시 사용하던 표현 그대로를 직서하도록 했지만 반대세력의 주장으로 반포는 중지되었다. 결국 내용보충과 용어의 직서를 개수하며 <고려사전문>이 완성되었지만 역사기술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반포가 중지되었다. <고려사전문>에서 고려말 기사가 누락된 것이 많음을 발견하고 기존의 편년체 형식이 아닌 기전체 형식의 고려사서를 편찬하였는데 이것이 <고려사>이다.
<고려사>는 김종서 등에 의해 세가,지,연표,열전,목록의 구성으로 집필되었다. 김종서를 필두로 집필되었지만 계유정난으로 인해 정인지의 이름으로 단종 2년에 반포되었다. 세가는 고려 왕들의 기록인데 성장과정,성품 등에 대해 언급하며 찬왈로 마무리 짓는 서술양식을 가진다. 고려조 당시에는 즉위년칭원법을 사용하였지만, 조선시대 찬자들이 중국칭원법을 사용하여 1년의 차이를 가진다. 지는 천문기록과 고려 특유의 자주적이고 토속적인 성격의 국가의례에 대한 서술이 있다. 서술방식에 있어서는 천인감응설에 따라 천변개시한다는 원칙으로 모든 변화를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목록에는 고려의 독자적인 인사관리법과 관직제도 증 국가운영에 대한 서술이 있는데 불교, 예문에 대한 서술이 배제되었다는 한계를 가진다. 열전은 왕자들의 기록과 신하들의 기록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왕자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현종 이전 왕자들에게는 태자,군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고 이후의 왕자들에게는 공,후 등 제왕으로 총칭하였다. 이는 황제국에만 존재하는 봉작제로 왕자들을 칭하였기에 고려의 독자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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