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서론
Ⅱ.본론
1. 조어도 분쟁의 전개과정
2. 조어도의 가치
3. 분쟁 해결방안 제시
Ⅲ. 결론
본문내용
Ⅰ.서론
한국과 일본 사이에 독도라는 영토문제가 있다면, 중국과 일본 간에는 조어도(釣魚島)에 대한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 일촉즉발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조어도는 원래 중국은 조어대열도(釣魚臺列島)라 불렀으며, 일본은 센카쿠열도(尖閣列島)로 부르고 있다. 그곳에서는 중국이 명명한 내용으로 보면, 조어도, 비뢰도, 남소도, 북소도, 대담소도, 대북소도, 황미초, 적미초, 등 8개의 소도로 구성된 도서군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섬은 약 4.3㎢이고, 총면적은 6.3평방km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일본 오키나와 나하에서 약 400km, 대만 기륭에서 북동쪽으로 약 190km, 중국에서 동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동중국해 남부에 위치한 무인도이다. 이 무인도를 놓고 중·일간에 분쟁이 생기게 된 것은 1972년 5월 오키나와 반환과 함께 일본이 실효적으로 점유하면서 분쟁이 시작되었으며, 최근 들어 다시 분쟁이 격화되어 양국이 조어도 분쟁으로 인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조어도 분쟁은 얼핏 보기에 단순한 영토 분쟁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어도 분쟁은 순수한 영토 수호 차원이 아닌 해저 자원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빚어진 복합적인 성격의 분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과제는 중·일 간에 벌어지고 있는 조어도에 관한 영유권 분쟁의 전개과정의 분석과 조어도의 가치를 분석하고 이의 연장선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Ⅱ.본론
1. 조어도분쟁의 전개과정
(1) 냉전시기(1970년 이후-1990년 이전)
1970년 대만선박이 조어도에 상륙하여 대만 국기를 게양하였을 때에도 중국과 일본은 모두 조어도에 큰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1년 미․일간의 오키나와 반환협정을 계기로 일본은 오키나와를 비롯한 조어도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시작했고,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와 중․일 외교관계수립원칙이 합의되면서 조어도문제가 중국과 일본 간의 분쟁이슈로 부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2년 8월 12일 ‘중일평화우호주약’체결 시기까지를 보면 양국의 지도자들은 조어도에 대한 논쟁을 묵인하거나 보류하는데 합의하여, 그다지 민감하게 대응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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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all/20120927/49707842/1, 2012.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