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우리나라 의복에 미친 영향
- 최초 등록일
- 2015.01.26
- 최종 저작일
-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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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일제잔재 속의 의복 ; 몸뻬바지
2. 몸뻬바지의 실제모습
3. 참고문헌
본문내용
일제잔재 속의 의복 ; 몸뻬바지
우리 생활 속에서 의식주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 중 의생활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다양한 양식과 변화양상이 나타난다. 사회적이나 문화적 변화는 의생활의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며 이 과정에서 한 사회와 그 시대에 적합한 형태와 구성물만 남게 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의생활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히 KBS '스펀지 제로' 프로그램을 통해서 현재까지도 입고 있는 몸뻬바지가 일제 강점기시대 부터 입기 시작했던 슬픈 역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몸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현재에 우리 의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몸뻬는 일본 에도(江戶)시대 동북지방의 농촌에서 여성들이 노동할 때 입던 노동복으로 바지의 통이 전체적으로 넉넉하고 밑단에 고무줄을 넣어 발목에 맞게 한 바지 형태의 의복이다. 후에 일본이 전시체제가 되면서 1942년에 자국 여성들을 위한 전시 부인 표준복의 ‘활동의’로 지정하여 방공 연습 시에 착용하도록 권유하였다.
<중 략>
일본이 처음에는 몸뻬를 방공 연습 때 활동성과 편리성의 간편함을 위해 권장하던 정도였지만 전쟁이 심화되면서부터는 항상 착용할 것을 강요하였으며, 이를 지키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피해를 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은 외압을 주면서까지 몸뻬를 확산시키고자 했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를 받아들이는데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일본의 의도와는 달리 낮은 보급률을 보였기 때문에 일제 말기로 갈수록 몸뻬 착용을 강요했다 일본은 몸뻬를 입지 않고 외출하면 관공서 출입을 금하고 전차나 버스 같은 교통수단도 이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몸뻬바지의 실제모습
현재 우리가 부르는 몸뻬바지는 일본어 '몬페'라는 말에서 유래되었고, 1995년에 우리말 순화집에서는 '일바지', '왜바지'라고 순화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누가 하나 "일바지 하나 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참고 자료
윤주리(2011). 「몸뻬의 보급과 확산 과정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새희망씨앗 블로그. http://fhs0119.blog.me/220172024249.
KBS 2TV '스펀지 제로. 346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