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의 전개과정
- 최초 등록일
- 2014.12.24
- 최종 저작일
-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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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쟁사라는 교양과목에서 A+를 받은 레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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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이라 불리는, 세르비아의 민족주의 청년에 의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부부 암살 사건이 발생했다. 오스트리아는 사라예보 정부가 사건의 배후라고 생각했고, 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 째 되던 날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이 전쟁은 세계의 열강들이 모두 참가한 최초의 세계대전이다. 하지만 흔히 사라예보 사건을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으로 꼽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전쟁을 위한 명분일 뿐이었다. ‘사라예보 사건’이 생기기 전부터 당시 유럽은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과 민족주의의 결합으로 국가 간 이해관계의 충돌이 잦아지며 대립해왔다. 산업혁명을 통하여 먼저 기술발전, 경제발전을 한 영국과 프랑스 등의 국가들이 자원의 확보와 시장의 확보를 위하여 식민지 사업을 빠르게 시작했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후 독일이 늦게 참여하며 기존의 선진국에 맞서기 위해 ‘삼국동맹(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을 맺었다. 프랑스와 영국 또한 성장하는 독일에 대항하려고 ‘삼국 협상(영국, 프랑스, 러시아)’이라는 동맹을 맺었다. 이해관계에 따라 동맹을 맺은 이 국가들이 제 1차 세계 대전의 주요 국가들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독일이 먼저 오스트리아의 편에서 참전했고 삼국동맹이 그 뒤를 따랐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세르비아는 러시아와 손을 잡고 삼국협상과 함께했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 이후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원하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렸고, 독일은 오스트리아 제국을 지원하기 위해서 러시아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적군보다 규모가 작았던 독일군은 러시아가 군대를 동원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을 예상하고, 먼저 프랑스를 점령하고 그 후에 러시아를 공격하려는 ‘슐리펜 계획(Schlieffen Plan)’을 세웠다. 독일은 먼저 프랑스로 가기 위해 서부전선에서 중립국이던 벨기에를 공격했다. 하지만 독일군의 예상과 다르게 서부전선에서 벨기에를 통과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프랑스는 방어를 단단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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