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한인들의 참상
Ⅲ. 숭무학교 설립과 운영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근대 한인의 이주는 만주·연해주·미주 등지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당시의 이민은 일본을 위시한 열강의 조선 침탈과 그로 인한 국권 상실의 위기, 그리고 조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내적 역량의 상실과 같은 내부적 요인과 세계 노동시장의 노동력 부족 현상으로 인한 아시 아 노동력의 필요성과 같은 외부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정치적, 경제적 성격을 보이고 있 었다. 이처럼 여러 요인에 의해 조국을 떠난 한인들은 정착지에서 한인 공동체를 조직하여 그들 의 이익을 보호하고 교육기관과 독립을 위한 무장단체를 설립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 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일제에 의한 국권피탈이 가속화 되면서 국권회복을 위한 이 주 한인 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만주와 연해주는 조선과 국경이 맞닿은 지 역으로 다수의 한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이후 해외독립운동의 터전이 되었으며, 미주의 경우 에는 모국(母國)과의 먼 거리로 인해 일제의 간섭이 적다는 장점을 활용하여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펼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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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만 메리다 지역의 이주 한인들은 그들이 처한 여건 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이룩해내기 위해 서 희생을 감내하고 치열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들은 만주나 연해주 같이 한인의 기반이 확 고한 지역에서도 실행하기 힘들었던 사관양성소를 설립하고 그들 자체적으로 민족교육을 실 시하여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특히 같은 시기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이민사회와 비교할 때 멕시코의 한인 사회는 경제적 여건과 생활여건의 열악함으로 인해 그 영세성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렇듯 불리한 조건에서도 멕시코 한인들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식의 함양을 위한 노력을 꾸 준히 전개해내갔다. 멕시코 혁명이 일어나던 1910년대에도 그들이 <<신한민보>>에 계속해 서 「메리다지방회보(美利多地方會報)」를 게재했다는 점이 이러한 그들의 활동을 증명해주 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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