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행정론 (강릉) 주제 : 60년 전후의 우리나라와 강릉의 도시화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14.12.18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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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60년 이전, 우리나라의 도시화에 대한 고찰
2. 60년 이후, 우리나라의 도시화에 대한 고찰
3. 강릉의 도시화 (우리나라의 보편적 도시화와 비교)
4. 강릉의 미래발전상
5. 레포트를 마치며
본문내용
60년 이전, 우리나라의 도시화에 대한 고찰
우리나라가 광복 후의 급격한 성장을 이룬 것을 보며 세계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라며 우리의 눈부신 성장을 아름답게 미화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우리의 발전사에 대해 굉장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세계가 주목할 만한 우리나라의 성장은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렇게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60년 이전의 뼈아픈 역사가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지배아래 우리 선조들에게 정신적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힘이 있었다는 것도 물론 본받아야하지만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많은 행정구역과 도로교통망이 형성된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강의시간에 배운 바로는 인구를 기준 도시를 규정짓는다. 따라서 도시화의 조짐을 보이게 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 시기의 1900년 경인선 보급에서 부터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부터 교통의 혁명이 불기 시작하여 인구이동이 뚜렷해지기 시작했으며, 일제의 주도아래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항만도시가 생겨났으며, 자원이 풍부한 도시는 광공업도시로 급격하게 성장하게 되었다. 또, 일본에 의해 북부는 공업도시로, 남부는 병참기지화 되었으며, 도시내부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구분이 되며 도시의 모습이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1945년 드디어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어 우리나라의 민족 자주성을 확립할 수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생겨난 625 전쟁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인구가 크게 감소하게 되었다. 625 전쟁 후에는 피난민과 귀환동포들이 피난도시로 이동을 하며 대구, 광주, 전주와 같은 피난민 수용도시가 발전하게 되었고, 동시에 이 시기에는 베이비붐(Baby Boom)이 함께 일어나 인구의 자연적 증가의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60년 이전에는 경제발전과 연관된 도시의 발전보다도 뼈아픈 역사로 인한 정치사회적인 도시의 발전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참고 자료
도시행정론 (박종화, 윤대식, 이종열 공저)
환경부 사이트 http://www.me.go.kr
프라임(Prime) 사전 (두산동아)
통계청 사이트 http://kostat.go.kr
녹색성장위원회 사이트 http://www.greengrowth.go.kr
녹색으로 읽는 도시계획(원제무 저)
강릉시청 사이트 http://www.gangneung.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