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정교 17세기이후
- 최초 등록일
- 2014.12.14
- 최종 저작일
-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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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니콘의 종교개혁
러시아 민중들은 16세기 초 바실리 3세에게 보낸 필로페이의 서한으로 시작되는 ‘모스크바 제3로마설’ 로 인해 전 세계에 남은 유일한 정교 국가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보리스 고두노프의 통치와 고두노프의 통치에 반기를 들었던 가짜 드미트리, 그리고 ‘동란의 시대’를 거치며 자신들이 진정한 정교 신앙의 수호자이고 정교에 대한 경건한 신앙심을 가진 민족인가 하는 문제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대흉년이 계속되어 굶어 죽는 사람이 늘어나고, 가짜 드미트리가 연이어 등장하면서 대규모 민란이 일어났던 ‘동란의 시대’ 가 도래 한 것은 러시아 사회의 타락과 부도덕성 때문이며, 그것은 러시아의 정교가 순수성을 지키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정교 역시 새롭게 개혁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17세기 중반의 러시아는 극도로 혼탁한 사회로 바뀌었다. 도박과 음주, 격투와 욕설이 난무하는 무질서한 사회였고, 사제들은 아무런 존경심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교의 전례에서도 이전과 같은 엄숙함이 사라지고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17세기 중반 러시아 정교의 ‘열성적인 경건주의자’ 들은 이러한 정교회 전체의 쇄신과 개혁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정신적이며 도덕적인 정화뿐 아니라 예식 자체의 형식적인 측면도 순수함을 보존하고 있는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며 총대주교에게 상소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 무렵 1652년 모스크바와 전 러시아 총대주교로 선출된 니콘은 이러한 ‘열성적인 경건주의자’ 들에 속해있었다. 하지만 니콘은 1653년 성호를 긋는 방식을 포함해서 전례 의식을 그리스 방식으로 바꿀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열성적인 경건주의자들은 이러한 개혁을 반대하였다. 과거의 방식으로 환원할 것을 바라던 이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니콘은 이미 12세기에 고쳐진 그리스 방식을 토대로 개혁을 한 것이었다. 이때 반그리스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던 경건주의자들은 그리스식의 전례가 전통을 고수하지 못하고 있으며, 과거의 러시아식 전례가 오히려 전통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참고 자료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 이덕형,
러시아 문화 예술 천 년의 울림, 이덕형
러시아 문화와 예술의 이해, 김성일 이명자 이영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