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 홍대용의 의산문답
- 최초 등록일
- 2014.11.17
- 최종 저작일
-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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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담헌 홍대용의 생애
2. 의산문답의 구성과 내용
3. 담헌 실학의 특징
본문내용
1. 담헌 홍대용의 생애
담헌 홍대용(1731-1783)은 1731년 충청도 청원군에서 나주 목사를 지낸 홍력(洪轢)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이며 그의 할아버지는 영조 때에 대사간을 지낸 홍용조였다. 어려서부터 매우 박학다식하고 다재다능했던 통유(通儒)로서 북학파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그의 나이 12세 때에 당대 대유학자였던 김원행(金元行)의 문하에 들어가 유학을 공부하였고, 16세에 거문고를 배워 평생을 즐겼는데 그의 연주 솜씨는 일품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박지원(朴趾源), 박제가(朴齊家),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등 북학파 실학자들과 많은 교류관계를 가졌다.
1759년 29세가 되던 해에 칠십 노령의 과학자 나경적(羅景積)을 찾아 그의 인격과 과학기술에 감명을 받고 그와 함께 혼천의, 자명종 등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3년 후인 1762년 32세에 마침내 두 대의 혼천의와 자명종을 완성하였다. 이들을 충청도 천원군 장명에 설치하고 이 사설 천문대를 농수각(籠水閣)이라 불렀다.
1765년(영조 41년) 그의 나이 34세 때에는 서장관으로 북경에 가는 숙부 홍억(洪檍)을 수행하여 군관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이때 홍대용은 60여 일 동안 북경에 머무르면서 두 가지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하나는 우연히 사귀게 된 항저우 출신의 중국학자들에게 경의, 성리, 역사, 풍속 등 많은 것을 배운 일이고, 다른 하나는 천주교 성당에 가서 서양문물을 접하고 독일 사람인 흠천감정 할레르슡인, 부감 고가이슬과 필담을 나누며 관상대를 견학하고 천문지식을 넓힌 일이다.
참고 자료
홍대용 저, 이숙경, 김영호 공역, 《의산문답》, 파라북스, 2013.
황광욱․정성식․임선영 저, 《한권으로 읽는 한국철학》, 동녘, 2007.
신현정 글, 정윤채 그림, 《만화 홍대용 의산문답》, 주니어김영사, 201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강좌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7.
한국철학사연구회 지음,《한국 실학 사상사》, 다운샘,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