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신발 산업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4.11.14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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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산에서 신발 산업의 성장 배경
2.신발산업의 사양화
3.사양화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
4.부산 신발산업의 현재상황 및 전망
본문내용
1.부산에서 신발 산업의 성장 배경
60~80년대 한국 `수출입국`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부산의 신발 산업. 신발산업 1세대 인맥은 한국전쟁 이후인 50년대 부산에서 시작됐다.
국제화학과 태화고무, 삼화고무, 동양고무, 보생고무 등 이른바 1세대 회사들이 창업됐는데 6.25전쟁 직후 피란민 등으로 풍부해진 부산지역 노동력이 산업 기반이 됐다.
신발산업에 가장 적합한 기후조건과 일본이 생산기지를 한국으로 넘겨준 것도 신발입지의 최적지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 1세대에 이어 경영수업을 쌓은 후배들은 60~70년대 들어 본격적 인 부산신발의 중흥기를 준비한다.
월남전쟁 당시 국내 미8군에 납품하면서 신발산업은 비로소 수출산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외화획득이 가능한 산업으로 인정돼 정부에서 갖가지 특혜를 받게 된다.
한국신발은 60년대부터 싼 임금을 기반으로 세계시장의 신발선진국인 일본과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한다.
또 한가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일본의 종합상사의 역할이다.
그 시기에 한국에 오더를 준 회사들은 상당수가 일본의 종합상사였다. 해외 소싱을 책임지고 미국의 유통업체로부터 오더를 받아서 한국에 생산을 하고 이것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삼각무역의 중심에 생산기지로서의 부산신발산업이 있었던 것이다.
<중 략>
3.사양화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
1990년대 중반, 부산신발산업의 전환계기를 찾고 있었는데 이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이루어 졌다.
하나는 기술혁신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장 집중화라는 것으로 대별된다.
이것의 핵심은 CAD/CAM 몰드 기술과 특수화 시장으로 대별되는 것이다. 기술혁신의 한 축인 몰드 기술은 나이키 공장으로부터 출발했는데 95년에 이미 나이키는 더 이상 한국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대만공장을 통해서 거의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빠른 철수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아디다스나 리복의 경우는 이미 철수를 거의 완료한 상태였다. 이때 나이키 공장이 살아갈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던 중 기술차별화를 이루지 못하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태광실업은 몰드 개발에 사운을 걸고 투자를 시작했다.
참고 자료
변현석 칼럼연재2편 부산신발산업 어떤사업인가?
한경신문 2011-2-11일자 경제면, 최근의 부산신발산업의 생산액과 수출구조변화 그래프
인터넷 신문 chosun biz 2012-7-19일자 기사, FTA의 영향이 부산 신발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