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전시과제도
- 최초 등록일
- 2014.10.20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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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전시과 이전의 토지제도
1) 식읍과 녹읍
2) 역분전
2. 전시과 제도
1) 시정 전시과
(1) 배경
(2) 내용
(3) 한계와 의의
2) 개정 전시과
(1) 배경
(2) 내용
3) 경정 전시과
(1) 과정
(2) 내용
(3) 무산계전시와 별사전시
3. 전시과의 운영
4. 전시과의 성격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전시과 이전의 토지제도
1) 식읍과 녹읍
고려 건국기의 토지제도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었는지는 확연히 알 수 없지만, 신라 하대 이후로 유지되어 온 식읍과 녹읍이 고려 건국기 때도 존속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먼저 식읍과 관련된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1. 태조 18년) 견훤(甄萱)을 상부(尙父)라 칭하여 … 그 자리를 백관(百官)의 위에 두고 양주(楊州)를 식읍으로 주었다.』
『2. (태조 18년) 김부(金傅)를 정승(政丞)으로 삼고 그 자리를 태자(太子)보다 위에 두었으며 해마다 녹 일천 석(碩)을 주고 … 그 시종자(侍從者)들을 모두 수녹(收錄)하여 전녹(田錄)의 지급에서 우대하였으며, 신라국(新羅國)을 없애 경주(慶州)로 만들어 그의 식읍(食邑)으로 삼게 하였다.』
1과 2는 통일 직전인 태조 18년(935)에 후백제의 견훤과 신라의 경순왕(敬順王) 김부의 항복에 대해서 내린 예우 가운데 하나로, 이 당시에도 식읍이 주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식읍은 특정 인물에 대해서 예우로서 수여되는 토지이며, 그 이후에도 고려 전대(全代)를 걸쳐서 유지되었다.
한편, 식읍과 함께 녹읍 또한 고려 건국기에 토지제도 중 하나로 운용 되었다. 다음의 사료는 녹읍에 관한 것이다.
『3. (태조 10년) 흥달(興達)은 견훤의 부하로서 고사갈이성주(高思葛伊城主)였는데, 태조가 강주(康州)를 거쳐 그 성을 지나게 되자 그의 아들을 보내어 귀부하였다. … 태조는 기뻐하여 흥달에게 청주녹(靑州錄), 아들 준달(俊達)에게는 진주녹(珍州錄), 웅달(雄達)에게는 한수녹(寒水錄), 옥달(玉達)에게는 장천녹(長淺錄)을 주고 또 전택(田宅)을 내려 포상하였다.』
『4. 이총언(李忩言) … 신라말에 벽진군(碧珍郡)을 보유하고 있었다. … 태조가 사람을 보내어 힘을 합쳐 화란을 평정하고자 달래니 총언이 글을 받고 기뻐하면서 그의 아들 영(永)으로 하여금 병사를 이끌고 태조의 정벌에 따라 나서게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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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운,『고려시대 사람들 이야기』, 신서원 200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탐구당,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