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개항이후 매춘의 역사, 개항이후 매춘의 역사, 식민지 시대의 매춘, 미 군정기의 매춘, 오늘날 한국의 매춘과 여성, 성매매 특별법 및 성노동자연대
- 최초 등록일
- 2014.10.13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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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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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항이후 매춘의 역사
2. 식민지 시대의 매춘
1) 유곽
2) 공창제도
3) 사창
3. 미 군정기의 매춘
1) 공창제도의 폐지
2) 양공주
4. 산업화, 도시화
1) 기생관광
2) 다방매춘
5. 오늘날 한국의 매춘과 여성
1) 점조직형
2) 개인형
3) 최첨단형
6. 성매매 특별법 및 성노동자연대
1) 성매매특별법
2) 전국성노동자연대
3) 성매매 특별법 찬성과 반대의견
본문내용
1. 개항이후 매춘의 역사
개항이후
- 매춘을 전업으로 하는 창기(娼妓)가 생겨난 것은 1876년 개항 이후이다.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일본인 창기들이 뒤따라 들어왔고, 일인 도래자가 격증함에 따라 매춘업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몇몇 창기를 고용하여, 성교를 희망하는 남성들에게 방과 창기를 함께 제공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 대좌부영업과 특별요리점의 형태로 매춘을 묵인했다. 또한 대좌부영업이 주택지에 산재하게 되자, ‘시내풍기의 유지’, ‘성병예방’ 이라는 이유로 이들 창기들의 집단 거주지인 유곽(遊廓)을 만들었다.
2. 식민지 시대의 매춘
♦ 유곽
- 공창들을 집창 방식에 따라 일정구역 내에 집단적으로 거주시킨 공인매음업소 또는 공인매음지역. 매음업자를 일정한 곳에 모아 특수사회로 고립시키는 한편, 보호함으로써 사창이 일반주거지역으로 침투·난립하는 것을 단속한다는 취지에서, 1585년 일본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오사카의 게이세이초를 유곽지대로 공인한 것이 시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곽은 1902년 부산에 만들어졌으며, 1910년에는 전국에 11개소가 있었다. 유곽의 출현은 중앙 또는 지방 정부에 의해 매춘행위를 공인받은 공창(公娼)의 출현을 의미한다.
♦ 공창제도
- 공창이란 관청의 허가를 받은 창부의 일반적 호칭이며. 공창제도는 정부가 일정 지역에서의 윤락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은 통감부 설치와 동시에 조선인 매음부의 공창화, 그리고 조선의 매매음 형태의 일본식 공창제도화를 추진하였으며 그것은 거류지의 공창제도화와는 대조적으로 강압적으로 행해졌다. 조선 공창제도의 특징은 일본 국내 또는 거류지에서 풍기단속을 위해 유곽을 설치한 것과는 달리 시내에 산재되어 있는 상태에서 매음업을 공허하면서 매음부의 성병검사를 중심으로 공창화를 실시한 점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