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14.09.25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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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왕위에 오른 배경
Ⅲ. 골품제도, 특히 성골에 대해서
Ⅳ. 남편 복이 없었던 여인
Ⅴ. 지혜로 위기를 극복했던 여왕
VI.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하게 여자가 왕인 나라는 신라뿐이다.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최초의 여왕은 선덕여왕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원래 내가 사극을 좋아했고 특히 여자가 나오는 사극이라면 가장 좋아했는데 고3 수험생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다 보지 못했지만 선덕여왕을 봤다. 선덕여왕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드라마 볼 당시 선덕여왕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나뿐만이 아니라 누가 봐도 픽션이 대부분임을 잘 알 것이다. 보면서 답답했던 것이 있다면 여인 쪽으로만 치우쳐져 있다는 점이였다. 안 그래도 삼국사기에서 여자가 왕이라는 점에 대해 너무 무시하는 부분을 보고 여자는 강해도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에서 더 여인 쪽인 면을 보여서 답답했던 것이다. 여기서, 선덕여왕에 대해 잘 모르는 나지만 감히 선덕여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왕위에 오른 배경
드라마 속의 선덕여왕처럼 선덕여왕은 제 26대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이다. 그녀의 생년월일은 의문인 상태이며 재위기간은 632∼647년이다. 그 당시에는 유교적인 부분이 없었기에 골품제도를 보고 아들이 아니 여도 자질이 있어서인지 진평왕이 밀어준 것 같다. 그녀에 대한 묘사는 [화랑세기 필사본]에서 표현한대로 ‘용봉(龍鳳)의 자태와 천일(天日)의 위의’를 지녔다는 말과 [삼국사기]에서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한 이였다. 나라 사람들은 ‘성조황고(聖祖皇姑)’라고까지 했다. 라고 하는 것을 봐도 시대의 분위기와 하늘로부터 받은 자질을 두루 갖춰 기회를 잡은 셈이다. 더군다나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나온 것처럼 ‘성골남진’ 이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성골에 대해 살펴보자.
Ⅲ. 골품제도, 특히 성골에 대해서
신라가 골품제(骨品制)라는 신분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에서 골(骨)과 품(品)으로 나뉘고, 왕족과 귀족인 골과 중간관리 계급 이하인 품은 넘을 수 없는 신분이라는 벽으로 막혀 있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 것이다. 골은 또 성골과 진골로 나뉘며, 품은 1에서 6까지 있는데 육두품이 그중 위라는 것, 이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참고 자료
네이버 백과사전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 한국학 중앙 연구원
三國史記
三國遺事
上大等考(李基白, 新羅政治社會史硏究, 1974)
新羅 奈勿王系의 血緣意識(李基東, 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郞徒, 韓國硏究院, 1980)
新羅政治體制の變遷過程―門閥貴族の集團支配と專制王權―(井上秀雄, 古代史講座4卷, 東京學生社,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