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1920년대 광주지역의 학생운동 조직
Ⅲ. 광주지역 학생시위의 전개과정
1. 나주지역 학생 반발 및 1차 시위
2. 2차 시위 결성 및 전남지역으로 확산
Ⅳ. 시위의 전국 확산과 방향
1. 서울에서의 학생운동
2. 지방에서의 학생운동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광주학생운동은 1929년 3월 ~ 1930년 3월에 일어난 학생운동이었다. 광주와 나주를 통학하던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의 충돌에서 비롯되었지만, 3․1운동 이후 노동 ․ 농민 ․ 학생운동의 성장 등 국내외의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사건이었다. 따라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 저항하여 일어났던 대표적인 민족운동 가운데 하나이며, 그 규모나 영향에서 3․1운동과 나란히 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광주학생운동은 학생이 민족운동의 선두로 활동한 운동으로 주목된다. 즉, 3․1운동 당시에는 기성 민족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학생들은 단지 시위의 선봉적 역할이나 계획의 매개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었다. 반면에 광주학생운동은 학생이 주도적으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학생의 역량이 극대화되었다.
광주학생운동은 역사적 사건의 중요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양동주의 『항일학생사』는 광주학생운동을 다룬 최초의 저서이며, 발발 배경, 광주 및 전국적 전개과정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그 외에 정세현, 김성식 등이 일제시기 학생운동사의 일부분으로 광주학생운동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종래의 연구경향을 뛰어넘는 연구성과로 조동걸의 연구가 주목된다. 그는 학생단체의 변천과정만을 서술하던 기존의 연구 수준을 뛰어넘어 학생운동의 조직과 사상 양측면의 발전과정을 전체적 연관성 속에서 해명하고자 했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수렴하여 1920년대 학생운동의 동향을 비롯하여 시위의 전개, 그리고 확산 등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보통 광주학생운동은의 전개는 대체로 세단계로 구분되어 왔다. 그 첫 단계는 1929년 11월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난 뒤 목포 · 나주 등 전남지역으로 확산되었던 단계이고, 두 번째는 광주의 소식을 접하고 동년 12월 서울과 함흥 · 공주 등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났던 단계, 그리고 세 번째는 1930년 1월부터 3월까지 전국 각처와 국외에서 전 민족적으로 전개되었던 단계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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