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최초 등록일
- 2014.09.23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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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김정희의 생애
2. 예술 세계
3. 학문 세계
Ⅲ. 결 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경주 김 씨 중에서 잘 알려진 인물을 조사해보았다. 한국사에서 19세기 최고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김정희는 추사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는 최고의 글씨는 물론이고 세한도로 대표되는 그림과 시와 산문에 이르기까지 학자로서, 또는 예술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금석학 연구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겼으며, 전각 또한 최고의 기술을 가져 천재 예술가로서 그의 이름을 능가할 인물은 거의 없다고 평가받고 있다. 추사 김정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김정희의 생애
김정희는 1786년(정조 10)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어릴 적 이름은 원춘(元春)이다. 김정희만큼 호가 많은 인물이 또 있을까.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추사(秋史)와 완당(阮堂) 외에도 승설도인(勝雪道人), 노과(老果), 천축고(天竺古先生) 등 생전에 100여 가지가 넘는 호를 바꿔가며 사용했다.
<중 략>
아버지가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갈 때 수행하여 연경에 체류하면서, 옹방강ㆍ완원같은 큰 유학자들과 접할 수가 있었다. 이 시기의 연경학계는 고증학의 수준이 최고조에 이르러 점차 난숙해갔으며 종래 경학의 보조학문으로 존재하였던 금석학, 사학, 문자학, 음운학, 천산학, 지리학 등의 학문이 모두 독립적인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금석학은 문자학과 서도사의 연구와 더불어 독자적인 학문분야로 큰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경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귀국 후에는 금석학연구에 몰두하고 금석자료의 수탐과 보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경학과 불교, ‘실사구시설’은 경세치용을 주장한 완원의 학설과 방법론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북한산순수비를 발견하고 『예당금석과안록』·「진흥이비고」와 같은 역사적인 저술을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후학을 지도하여 조선 금석학파를 성립시켰다. 그 대표적인 학자들로서는 신위·조인영·권돈인·신관호·조면호 등을 들 수 있다.
참고 자료
박철상,「추사 김정희의 금석학 연구 : 역사 고증적 측면을 중심으로」, 계명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정혜린 저 (2008),『추사 김정희의 예술론』, 신구문화사.
허미경,「추사 실사구시 정신의 서예 미학적 해석」,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