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과 한민당, 자유당의 창당, 정당 구조, 정책
- 최초 등록일
- 2014.09.12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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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문제의 제기
Ⅱ. 해방 직후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
Ⅲ. 한민당에 대하여
Ⅳ. 자유당에 대하여
Ⅴ. 결론
본문내용
Ⅰ. 문제의 제기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살펴보고 현재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는 무언가 잘못되어 있는 것 같다. 매 선거철마다 이슈가 바뀌는 것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매 선거철마다 정당이 바뀌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왔다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현 정치는 여전히 이데올로기 간의 대립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며 실제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선거철마다 뜨겁게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진정 우리나라에 보수집단이 있는지, 진정 진보집단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만의 코드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면 그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보수 진영의 뿌리, 진보 진영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이 연구를 시작해 보았다. 선거철마다 이합집산으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현 시대 정치인들의 나쁜 습관이 어디서부터 이어져 온 것인지 알아보고 싶다. 또 선거철마다 새롭게 창당이 되거나 기존의 정당이 없어지는 풍습 아닌 풍습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이번 과제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해방 직후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
1.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혁명가 김산의 삶을 다룬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보면 “조선은 평화를 원했으며, 멍청하게도 세계열강을 향하여 ‘국제정의’의 실현과 ‘민족자결주의’의 약속 이행을 애원하고 있는 늙은 할망구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해방 직후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이러한 해방 전의 답답했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는 단일 된 행정기구가 없어 갈등이 반복되었는데 특히 경제문제에 있어서 배분문제가 대두되었다. 미국의 잉여 농산물과 식료품이 원조되었지만 이 원조의 조건은 친미정권・친자본주의 정권이었다. 따라서 해방 직후 이미 우리나라는 미국의 열등한 동맹국으로 전락해버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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