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정통(Orthodoxy)과 이단(heresy)의 정의
- 최초 등록일
- 2014.09.08
- 최종 저작일
- 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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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냉소적인 퀴닉(Cynic) 학파에 의하면, “이단이란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수용할 수 없다고 선포하고 그 소수를 정죄하기 위해 강한 힘을 행사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기독교 역사를 피상적으로 바라보면 위의 정의는 정당화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정의가 아주 잘 못된 것은 아니다.
로마의 황제들이 기독교를 채택한 후 로마신성제국에서 교황과 황제가 연합하여 기독교의 주류를 형성했을 때 기독교 교리의 통합을 이루었다. 주후 313년에 콘스탄틴 황제가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인정한 후 정치와 종교적 정통이 손을 잡게 되었다. 세속적인 정치의 요구에 따라 종교적인 신앙이 타협을 이루어 정통을 형성한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에 각 나라는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종교적 정통성을 어느 때 보다 강화하였다. 그래서 영국에서 로마 카톨릭 신자가 되는 것은 바로 이단일 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대역죄에 해당할 수 있었다. 17세기 남 프랑스의 사이벤 지역에서 위그노 신도가 되는 것은 바로 로마 교회에 뿐 아니라 프랑스의 루이 14세에 무장 반역하는 것이었다. 18세기 파리에서 이단으로 선포된 젠선(Jansen) 교리를 신봉한다는 것은 예수회 수사들과 프랑스 정부를 타도하기 위한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것과 같았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정통은 기독교의 진리와 동의어가 될 수 없었다. 지역적이고 일시적인 정통은 다른 정통을 무효라고 하고, 이쪽이 정통이면 저쪽은 이단이었다. 어떤 표준적인 정통 규범이 생기기 전에 이단자란 마치 미국 솔트레이크 시의 몰몬 교도들 사이에 끼어있는 카톨릭 교도처럼 단순히 어떤 종교 공동체 내에서 소수가 믿는 신앙에 속한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교회사를 보면, 한 시대가 정통으로 취급한 것이 다른 시대에는 이단으로 정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들 중 한 사람인 오리겐(Origen, 185-250)의 가르침은 그 당시에는 정통으로 수용되었으나 4, 5, 6세기에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켜 그의 교리 중 어떤 것은 알렉산드리아, 사이프러스, 예루살렘, 아마도 553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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