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사] - 장승의 정의, 장승의 어원, 장승의 기원,장승의 쇠퇴, 장승의 종류, 장승을 세운이유
- 최초 등록일
- 2014.09.05
- 최종 저작일
- 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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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장승이란?
2. 장승의 어원
3. 장승의 기원
4. 장승의 쇠퇴
5. 장승의 종류
6. 1980년대 장승
7. 왜 장승을 세웠나?
본문내용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목상이나 석상을 장승이라고 한다. 마을의 수문신(守門神) ․ 수호신 ․ 경계표 ․ 이정표(里程標) 등의 구실을 하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나무나 돌기등의 상부에 인면(人面)을 그리거나 조각하고, 하부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등의 글씨를 새기고 거리를 표시하기도 한 신상(神像)으로, 보통 남녀 한쌍이 세워져 있다. 장승은 동제(洞祭)의 주신 또는 하위신으로서 신앙의 대상이며, 솟대 ․ 돌무더기 ․ 신목(神木) ․ 서낭당 ․ 선돌 등과 함께 동제복합문화를 이룬다.
<중 략>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사대부 사회의 통치 이념인 유교가 현세적 도덕 규범의 성격이 강함에 따라 생산, 죽음이나 질병, 고통 등의 문제와 연관되어 장승 신앙이 부활할 소지가 생겨난다. 궁중에서도 일정하게 역할을 한 무속적인 금 장군, 갑 장군이라 불리는 세화의 등장이나 용호 그림등의 유행도 그 기운을 익게 하는 또 다른 사례이다. 이는 지배층 문화에서 소외된 불교, 도교가 민간 신앙과 결합하여 신석기 이래의 민속적 장승신앙이 부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의 새로운 장승문화에서 그 이름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방어대장군, 지서대장군, 상원주 장군, 하원당 장군 등으로 붙여진 것이다.
<중 략>
1980년대 중반부터 각 대학에서 세우기 시작한 ‘시국 장승’이 그것이다. 대외 및 국내 정세에 대한 학생들의 민감한 반응 및 정치 참여 의식은 1980년대에 들어서만도 숱한 시위나 농성을 빚어내었다. 학내 문제로부터 노동문제, 농촌문제, 민주주의 정착 등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불사르며 그때그때의 목적에 상응하는 홍보물과 구호를 제작하여 학생들의 뜻이 세상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였다. 학생들의 이러한 시도는 미상불 사회와 불안 정국에 적지 않은 충격과 영향을 끼치며 끈질기게 전개되어 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