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녀와 환향녀
- 최초 등록일
- 2014.08.30
- 최종 저작일
- 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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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공녀
2. 공녀 요구의 목적
3. 공녀의 헌납
4. 공녀의 선발과정
5. 공녀의 영향
7. 공녀의 운명
8. 환향녀
본문내용
1. 공녀
공녀란 중국의 요구에 딸라 보내어진 한국의 여자, 특히 처녀들을 뜻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특수 공물이었다. 중국이 우리에게 공녀를 요구한 까닭은 중국과 우리나라는 조공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2. 공녀 요구의 목적
원나라가 우리에게 공녀를 요구한 목적.
첫째, 부녀자 강탈을 통한 고려인들의 저항을 무력화 시키고, 끊임없는 공녀 요구로 인해 외교적으로 탄압을 가하고, 더 나아가 고려인들을 그들의 정신적인 노예로 만들려는 원나라의 고도의 복속정책이었다.
둘째, 원나라 부녀자 부족현상에 따른 왕실 궁녀 조달을 위해 였다.
셋째, 고려 여인들에 대한 몽고인들의 성적야욕 때문이었다.
명나라가 우리에게 공녀를 요구한 목적.
명나라 황제의 시중을 드는 궁녀의 조달 목적.
청나라가 우리에게 공녀를 요구한 목적.
양국간의 우호를 증진한다는 명분 아래 청나라 황족 또는 대신 자제들과의 혼인을 위해 공녀를 요구 하였다.
<중 략>
이렇게 고려와 조선시대 끌려간 공녀들은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고려시대 원나라에 공적으로 끌려간 공녀들은 대부분 황궁의 궁녀가 되어 황제 ,황후 , 황족의 시중을 드는 일을 맡았다. 그 외의 처녀들 성의 노리개로 상납된 처녀들 가운데는 불행히도 인신매매시장에 끌려가 성의 상품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처녀들이 이처럼 비참한 신세를 면치 못하였으나 그 중에는 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에까지 올라 영화를 누린 이들도 있었다. 원나라 세조의 궁녀의 이씨나, 김심의 딸 달마실리 또, 유명한 기황후가 있었다.
조선전기의 처녀들은 모두 황제의 총애를 받아 현인비나 후궁이 되었으나 이를 시기한 모함으로 인한 사건인 어여지난(魚呂之亂)이 발생하여 태종때 헌납된 처녀 8명은 1명을 제외한 7명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