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근현대사] 신해혁명

등록일 2003.06.27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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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11년 10월, 장강중류에 있는 도시 우창에서 혁명군이 봉기했다. 혁명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파급되어, 12월에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다음해인 1912년 1월 1일자로 공화제국가의 중화민국이 성립되었다. 혁명이 간지로 신해의 해에 일어나서 일반적으로 신해혁명이라 부른다. 이 혁명은 2천 수백년 동안 계속된 전제왕조에 종지부를 찍고, 민주주의 이념에 근거하여 공화제국가를 건설한 것은 중국역사상 실로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공화제국가로 되었다고는 해도 중국사회가 자유.평등의 이념에 의해 자본주의적 국민국가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혁명의 성과는 봉건 관료 원세계에게 빼앗기고 일시적으로 제제가 부활되었다. 원세계가 죽고 난후에도 봉건사회와 다름없는 군벌지배가 오래 계속되었다.
나는 혁명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구태의연한 사회가 계속되었던가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어 혁명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중국은 아편전쟁을 패배하고 태평천국을 겪는 내우외환에 흔들리고 있었다. 중국의 전통적인 관료지배와 근대적 자본의 활동사이에 부즉불리의 관계가 보이는 것은 양무시기에도 마찬가지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중국은 하나의 '세계'라는 바로 중화사상이다. 중화사상에 대해서는 이미 수업시간에 익힌바 있다. 중국의 근대는 바로 '중화세계의 옹호와 서양문명의 수용이 서로 갈등하는 역사였고 신해혁명도 이러한 역사의 연장선 위에서 '중화세계'를 붕괴로 이끈 이민족왕조를 타도하기 위하여 과거 한민족의 위대한 업적을 떠받드는 한편 서양문명의 정수라 할 자유민권사상을 섭취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자기모순의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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