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성균관

등록일 2003.06.26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1.설치
2.학사 행정
3.교육과정
4.교수와 문묘종사
5.재정
6.의의
7.성균관의 건물

본문내용

1.설치
성균관은 조선시대에 인재양성을 위하여 서울에 설치한 최고의 유학 교육기관이다. 이는 고려말 국자감을 성균관으로 개칭(1362)한 것을 조선건국(1392)과 동시에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물론 이는 국립대학의 성격을 지닌다. 성균관은 국학·태학·국자감·반궁·현관·수선지지·성균관 등으로 쓰여 왔다. 국학은 국가의 학교라는 뜻이고, 태학은 최고의 학교라는 뜻이며, 반궁은 제후의 지역에서 대학교육을 한다는 뜻, 현관은 현명한 이를 양성하는 기관이라는 뜻이고, 수선지지는 선을 행하는 최고의 터라는 의미이다.
우리 나라에서 인재양성을 위한 최고학부의 기원은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시대의 국자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우리 나라 최고학부의 명칭으로 성균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298년(충렬왕 24)에 국학(국자감을 개칭한 것)을 성균감이라 개칭한데서 비롯된다. 그 뒤 1308년(충렬왕 34) 충렬왕이 죽고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성균감을 성균관이라 개칭했다. 1356년(공민왕 5)에는 배원정책에 따른 관제의 복구로 국자감으로 환원되었다가 1362년(공민왕 11)에 다시 성균관으로 복구 되었다. 한편 공민왕 즉위 초에는 종래까지 성균관(국자감)에 유교학부와 함께 설치 되어온 율학·서학·산학 등의 기술학부를 완전히 분리시켜 따로 교육시키게 함으로써 성균관은 명실공히 유학 교육만을 전담하는 최고학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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