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의 기원] 조선공산당, 코멘테름

등록일 2003.06.25 한글 (hwp) | 1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코민테른의 기원과 역할

3. 조선공산당의 창당준비과정
(1) 해외한인들의 사회주의 이념 수용
(2) 국내한인들의 사회주의 이념 수용
(3) 조선공산당 창당준비

4. 조선공산당
(1) 제1차 조선공산당
(2) 제2차 조선공산당
(3) 제3차 조선공산당
(4) 제4차 조선공산당

5. 조선공산당의 해체 「12월테제」
(1) 당시 조선공산당의 상황
(2)「해산결정서」,「12월테제」의 채택

6.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7.「12월테제」에 대한 비판

8. 맺는말

본문내용

7.「12월테제」에 대한 비판



러시아에서 마르크스 정당을 조직하고 이끌었던 사람들도 초기에는 거의 모두가 지식인과 학생들이었다.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초기에는 마찬가지였다. 조선공산당이 파벌주의, 분파주의에 빠졌다는 지적도 옳았다. 그러나 조선공산당만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의 공산당들도 특히 초기에는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각국의 공산주의 운동은 파벌과 파벌 사이에 주도권 싸움이 언제나 끊이지 않고 계속된 역사가 이루어졌었다.
1920년대 초만 해도 그 수가 적던 공장 노동자들의 수는 1920년대 중반 이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열악한 근로 조건 아래 겨우 연명이나 할 정도였다. 대다수 농민들의 운명은 더욱 비참했다. 그래서 곳곳에서 소작 쟁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또 만주나 중국 또는 연해주로 유랑의 길을 오르기도 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최하급의 일용 막벌이꾼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1930년대에 들어가면서 여러 지방에서 농민들은 조직화된 투쟁을 벌이곤 했다. 어떤 곳들에서는, 특히 함경도 지방에서는 농민들이 뭉쳐 채권자의 집을 습격해 빚 문서들을 없애기도 했고, 칼과 낫을 들고 일본 경찰관들에 맞서기도 했다.
코민테른은 개량주의적 민족주의자들과의 제휴를 끊고 과격한 농민 투쟁을 1차적 목표로 삼도록 지시한 것은 조선의 당시 상황에 비추어 지나친 비현실적 조치였다. 급진적인 농민 투쟁은 왜경의 철저한 탄압 앞에서 언제나 쉽게 붕괴되고 말았고, 더구나 개량주의적 민족주의자들과의 제휴를 끊게 만든 것은 통일전선 형성 그 자체를 무너뜨려 혁명투쟁의 약화라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그 단적인 예가 좌익이 주도한 신간회의 해체이다.

참고 자료

소지형 외3인 저,『북한의 이해』 , 건국대학교출판부 , 1999
신주백 저,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1920-1945)』 , 아세아출판사 , 1999
성대경 저, 『한국현대사와 사회주의』 , 역사비평사 , 1988
박명서 저, 『통일시대의 북한학강의』, 돌베개 , 1999
한창수 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 지양사 , 1984
강만길 저, 『고쳐쓴 한국현대사』, 창작과비평사 , 1994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