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NEXT SOCIETY를 통해 본 피터 드러커의 미래 사상

등록일 2003.06.25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300원

소개글

피터드러커의 서적을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해서

성의를 다해서 썼어요....참고로 A+받았던 리포트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 피터 드러커는 어떤 사람인가

피터 드러커는 이런 책을 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분석하고, 그리고 미래를 전망하는 책 말이다.
사실 드러커 박사가 사용하기 싫어하는 말이 바로 예측과 예언이다. 드러커는 "나는 예언을 한 적이 없다. 나는 그냥 창 밖을 내다보고 눈에 띄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 하지만 아직은 남들의 눈에는 분명하지 않은 것을 말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사실 드러커의 생애는 자신의 말마따나 방관자와 분석자로 일관해왔다.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글에서, "14세가 되던 해, 나는 내 앞에 가로놓인 진흙탕을 피하고 싶었으나 뒤에서 계속 밀려오는 시위대 때문에 그냥 지날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온 몸으로 진로를 바꾸려 했으나 헛수고였다."라고 쓰고 있다. 결코 원하지 않는 길이지만 커다란 힘에 밀려가는 것은 큰 고통이었고, 앞으로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이 숙명이 될지도 모른다고 느꼈다고 한다.
에릭 흡스바움의 연대 구분처럼 20세기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 시작하여 소연방이 해체된 1991년까지라고 한다면, 1909년 생인 드러커는 19세기에 출생하여 20세기를 거쳐 21세기를 살고있는 사람이다.
드러커는 오스트리아의 고위 공무원이었던 부친과 의사 어머니 그리고 현명한 할머니 밑에서 전인적 교육을 받았고, 부친의 친구였던 슘페터와 폰 미제스 등 석학들과는 어릴 때부터 접촉했다. 드러커의 논문과 저술은 그 수량뿐만 아니라 시작부터가 매우 오래되었다. 부모님을 따라 출입한 비엔나의 살롱에서 드러커가 15세 때 최초로 발표한 논문은 - 비록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 "파나마 운하의 개통이 세계무역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함부르크 대학을 거쳐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 박사학위를 받은 드러커는 동 대학의 강사 시절,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가 머천트 뱅크와 보험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런던에서는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했다. 1937년 대공황 시절, 드러커는 영국신문 컨소시엄의 특파원 자격으로 미국 동부에 이주했다. 미국에서는 마셜 맥루한 등과 교분을 맺으면서 타임지와 포천지에 기고했고, 여러 대학에서 시간 강사 노릇도 했다. 과목은 정치학, 통계학, 철학, 그리고 경영학 등 사회과학 전반을 망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의 몰락을 예견한 "경제인의 종말"(1939) 그리고 뒤이은 "산업인의 미래"(1942)로 드러커는 미국의 정치학계와 경제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이 무렵 드러커는 GM과 GE 그리고 IBM 등에 컨설팅을 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드러커는 마셜플랜에도 참가했고 그 후 미국의 여러 대통령들에게도 조언을 했다(드러커의 논문 가운데 "대통령이 지켜야 할 6가지 규칙들"이라는 것도 있다).
드러커는 1950년부터 뉴욕대학에 정교수로 취임하여 20년간 근무했으며, 1971년부터 지금까지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대학교 드러커 경영대학원에 재직하고 있<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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