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의 개혁정치
- 최초 등록일
- 2003.06.25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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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영조시대의 정치적 유산과 정조의 대응
본론
1.왕권 강화를 위한 노력
(1) 탕평책(蕩平策)
(2) 규장각
(3) 초계문신제도
(4) 장용영
(5) 화성 신도시 건설
2. 사회·경제정책
(1) 북학사상의 수용
(2) 서얼허통정책
(3) 신해통공정책
(4) 문체반정운동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영조시대의 정치적 유산과 정조의 대응
조선 중기 이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사림은 국왕 파견세력인 지방관 중심의 통치질서를 대신하여 향촌사회의 운영주체로 부상하였으며, 중앙에 진출하여 학연을 매개로 붕당을 형성하였다. 16세기 전후의 사화(사화)라는 정치적 시련 속에서 오히려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이들 사림세력들은 정(정)․주 성리학에 입각하여 수기치인의 학, 즉 성학(성학)을 국왕의 자격조건으로 설정하였다. 이들은 국왕도 주희가 세운 대통일의 의리(종법․예의)를 따라야 한다는 논리로 왕권의 약화와 신권의 강화를 정당화하였는데, 이는 결국 임금과 각 붕당을 대표하는 신하가 함께 통치한다는 ‘군신공치주의’로 체계화되었다. 이 같은 사대부들의 군신공치주의와 붕당정치론에 대해 국왕들은 다양하게 반응하였는데, 숙종의 경우 선조와 비슷하게 주도(주도) 붕당을 번갈아 교체하는 방식(환국)으로 막강해진 신권을 견제하려 하였다. 그런데 숙종의 물갈이식 정국변동(환국)은 오히려 붕당간의 대립을 가열시켰으며, 각 붕당원은 자신의 생존과 가문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당론을 충실히 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참고 자료
1) 박광용, 「영조와 정조의 나라」, 푸른역사, 1998.
2) 박현모, 「정치가 정조」, 푸른역사, 2001.
3) 유봉학, 「정조대왕의 꿈」, 신구문화사, 2001.
4) 정옥자,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 돌베개, 1999
5) 박현모, 「정조의 탕평정치과 공론: 성왕론의 관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