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역사] 권문세족, 신진사대부의 대외관계

등록일 2003.06.25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원의 간섭과 고려의 시련
여·원 연합군의 일본원정
정동행성의 설치와 입성책동
쌍성총관부와 동령부 및 탐라총관부
여·원 양국간의 인적·물적 교류

2. 고려의 반원 친명 외교정책
공민왕의 반원 친명 외교정책
우왕대의 대원.명 양단외교

본문내용

雙城摠管府와 東寧府 및 耽羅總管府
元은 직접 우리 영토의 일부를 강점하고 그곳에 雙城摠管府와 東寧府·耽羅總管府등을 설치하여 고려는 한동안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한 때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 쌍성총관부는 몽고와의 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인 高宗 45년(1258)에 東北面의 주민 조휘와 탁청 등이 나라의 혼란을 틈타 兵馬使 愼執平 등을 살해하고 叛附하자 원이 和州에 설치한 것으로서, 저들은 일방적으로 鐵嶺을 경계로 삼아 登州 以北, 定州 以南 지역을 그 관할 하에 예속시켰다. 이에 따라 고려로서는 영토가 축소된 것은 말할 나위 없고, 한층 심한 원의 압력과 분할통치정책에 시달려야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쌍성총관부의 관할지역에 대한 고려의 영향력은 증대되어 갔는데, 忠烈王 24년(1297)에 화주 이남의 등주·고주 등 일부 지역을 되돌려주는 것도 그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화북 지역은 여전히 원나라가 지배하다가 恭愍王 5년(1356)에 이르러 反元政策의 추구와 함께 東北面兵馬使 柳仁雨가 무력으로 쌍성총관부를 공파함으로써 고려는 99년만에야 완전히 수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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