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전라남도 담양 소쇄원에 대해

등록일 2003.06.24 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9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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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한 선비정신
2.스승 조광조의 유배길 따라 낙향
3.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겸손한 설계
4.소리 잘 듣기 위해 축대 높이도 조절
5.“인생은 꿈같이 변하는 것”
6.담양소쇄원의 여러가지 자료
7.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
8.나의 생각

본문내용

스승 조광조의 유배길 따라 낙향
소쇄원(瀟灑園)을 만든 양산보(梁山甫; 1503∼1557)는 연산군 9년에 태어나 열다섯살 때 아버지를 따라 한양에 올라가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생이 되고 2년 뒤에 과거에 1차 급제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 해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돼 스승이 능주에 유배되고 이어서 사약을 받게 되자 장례를 치르고 자신이 성장했던 이곳으로 낙향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마음에 담아왔던 이곳 산기슭에 계곡을 중심으로 자연미를 살려 조성한 것이 소쇄원. 언제부터 작업을 시작했는지 분명치는 않으나, 여러 기록으로 미뤄 1530년대에 시작해 3대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그는 처남 김윤제(金允悌), 외사촌형 면앙 송순(宋淳),사돈 김인후(金麟厚) 등을 비롯한 당대의 쟁쟁한 선비들과 교류하며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세파의 표면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라는 뜻의 처사공(處士公)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소쇄’는 ‘빗소리 소’ 또는 ‘물 맑고 깊을 소‘에, ‘물 뿌릴 쇄’ 또는 ‘깨끗할 쇄’라는 뜻과 음을 갖는다.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아예 양산보를 소쇄옹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소쇄원을 단순한 은둔처나 정자 몇 채가 들어서 있는 정원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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