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학개론] 조선 시대의 조경양식
- 최초 등록일
- 2003.06.24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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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조 선 시 대 조 경 양 식 의 특 징
조 선 시 대 조 경 의 종 류
본문내용
한국의 정원은 우리나라 자연의 고유 형상과 아름다움을 존중하고, 가급적 인공을 덜 가해서 최대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하였다. 우선 풍수설에 따라 명당을 찾아서 집터를 정하고 주위 환경에 조화되도록 자연미를 충분히 살려서 정원을 만들었다. 햇볕이 잘 쬐는 집터에는 수목을 심고, 그늘지고 볕이 넉넉하지 못한 곳에는 화목을 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집 안팎의 풍경도 자기 뜰의 배경으로서 소중히 끌어들이는 '차경수법(差境手法)'을 즐겨 사용하였다. 한국의 조경의 특색이라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최대한으로 살렸고 인공물들도 비교적 자연환경에 조화되게 배치한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더욱 발전하며 우리나라의 전통조경양식으로 완성된다. 조선시대가 시작되면서 불교를 멀리하고 유교를 숭상하므로 한국적 기후와 풍토에 맞는 색채를 가진 자연풍경식 조경이 확립되었다. 신선설에 입각한 음양오행설과 풍수지리설에 의해 주택지나 우물자리, 산소자리 등을 택하는 풍습이 성행되었으며 신라와 고려의 불교문화가 융합하여 이에 따른 정원조경형태가 발달하게 되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산세가 좋은 곳과 물, 나무, 돌 등의 자연풍경이 좋은 곳을 택하였다. 집터는 뒤가 높고 앞이 낮은 곳으로 볕이 잘 드는 곳이라야 하였고, 앞뜰보다는 뒤뜰이 넓은 후원에 중점을 둔 조경 양식이었다. 조선시대는 우리나라의 전통 조경 양식, 즉 후원(後園) 조경과 사괴석(四塊石)을 쌓아올린 노단식(露壇式, 테라스형) 화단 조경과 방지(方池), 중도(中島)의 호안(護岸)이 주요 양식으로 정착하는 시기이다. 물론 이전에도 이와 같은 형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조선 정원에서는 공통적인 특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두드러진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