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안압지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3.06.23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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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진도 예쁘게 첨가한 레포트입니다_
A+받은거에여~
목차
1. 안압지(雁鴨池)에 대하여
2. 안압지의 본래 이름은 월지(月池) 이다??
3. 안압지의 웅장한 크기와 특징
4. 안압지 출토 유물
+참고자료+ 안압지에서 출토된 남근 모조품
본문내용
안압지는 신라 천년의 궁궐인 반월성에서 동북쪽으로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다. 통일시기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 많은 부를 축적한 왕권은 극히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면서 크고 화려한 궁전을 갖추는 데 각별한 관심을 두었다. 그리하여 통일 직후 674년에 안압지를 만들었으며 679년에는 화려한 궁궐을 중수하고 여러 개의 대문이 있는 규모가 큰 동궁을 새로 건설하였다.
안압지와 주변의 건축지들은 당시 궁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새 동궁, 곧 임해전의 확실한 위치는 알수 없으며 다만 건물터의 초석만 발굴되었다.
임해전과 안압지에 대한 기록『삼국사기』을 살펴보면 궁내에 못을 팠다는 기록이 문무왕 14년(674)과 경덕왕 19년(760)에 두 번 나타나며, 임해전에서 군신에게 연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효소왕 6년(697)과 혜공왕 5년(769)에 있다. 또 소성왕 2년(800)에 임해문과 인화문이 파손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상을 정리해본다면 약 백 년 간격을 두고 궁내에 못을 팠다는 것은 처음 판 못을 보수나 확장한 것으로 해석되고, 임해전은 그 못 가까이에 지어진 동궁이라 볼 수 있다. 또 임해문과 인화문이라는 것도 임해전을 중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