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세기 농민항쟁의 전개와 성격

등록일 2003.06.23 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1. 무신정권 전반기의 농민항쟁
1)이의방, 정중부정권하의 농민항쟁
2)경대승정권하의 농민항쟁
3)이의민정권하의 농민항쟁

2. 최씨정권하의 농민항쟁과 신라, 고구려부흥운동
1>. 최충헌정권하의 농민항쟁과 신라부흥운동
1) 만적을 비롯한 천민들의 항쟁
2) 경상도 지역의 농민항쟁과 신라부흥운동
2>. 거란의 침입과 고구려부흥운동

3. 대몽항쟁기의 농민항쟁
1>. 대몽항쟁 초기의 농민항쟁
2>. 강화정부시절의 농민항쟁과 백제부흥운동
3>. 삼별초의 항쟁에 호응한 농민항쟁

4. 고려 후기 농민항쟁의 의미

본문내용

1. 무신정권 전반기의 농민항쟁

12, 13세기의 사회생산력 발전의 성과물을 둘러싸고 국가, 지배층, 민이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가운데 민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를 관철하려는 국가의 수취질서와 그 매개체로서의 군현제도는 농민항쟁을 더욱 증폭시켰다. 또한 이 시기에 권력을 정당화하고 은닉하는 역할을 했던 이데올로기의 파탄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제 불교나 유학 그 어느 것도 민으로 하여금 박탈의 상황을 수락하도록 하는 역할을 감당해내지 못하였다. 이는 결국 민의 저항을 더욱 격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1)이의방, 정중부정권하의 농민항쟁

무신정권은 권력을 장악하자 지방의 조세, 공물의 징수와 역역자원을 확보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적 기반을 구축했다. 외관에 임명된 집권 무신의 부하나 문객들은 대개 수령으로서의 자질보다는 오직 자신과 집권무신의 입지와 경제적 기반의 구축에 힘을 쏟아 외관 사이의 갈등과 민에 대한 수탈을 가중시킴으로써 농민항쟁을 촉발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무신 정권하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서북면지역의 농민봉기는 이에 연유하는 바가 컸다. 서북면지역의 향리층과 농민들이 정변에 가담함으로써 개경문벌 귀족체제의 수탈자적 성격을 인식하여 농민항쟁으로 진전시킬 수 있었다. 이는 중앙정계의 불안정한 정국에 따른 대지방통치의 이완 속에 이 지역민의 동요를 가져와 중앙정부에서조차 이를 우려할 정도였고, 결국 1172년 창주, 성주, 철주인들의 봉기가 일어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지역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1174년(명종 4) 9월에 당시 서경유수였던 趙位寵이 양계의 여러 성에 격문을 보냈다.
이 격문을 보고 군현개편의 이해당사자인 서북계의 토착세력이었던 都領들이 40여 성의 주민을 결속하여 조위총에 호응하였다. 약 2년간 지속된 조위총의 봉기는 중앙정부의 강력한 토벌에 의해 1176년(명종6) 6월에 진압되었지만 그 여진은 계속되었다. 조위총 여중의 봉기는, 전해의 싸움에서 서경을 끝까지 지키다가 성이 함락될 때 도망한 장정들이 있었는데, 성이 포위되었을 무렵 성을 넘어와 관군에 항복한 자들이 도리어 그들을 반역자로 몰면서 그들의 부녀와 재산을 약탈함으로써 일어난 것이다.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