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원개혁과 신진사대부의 성장

등록일 2003.06.23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200원

목차

1. 반원개혁과 정치세력의 재편
2. 신돈의 개혁과 신진사대부의 대두
3. 신진사대부의 성장과 조선건국

본문내용

1. 반원개혁과 정치세력의 재편

고려에서는 1356년(공민왕5)에 반원개혁이 성공함으로써 원의 간섭을 종식시켰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곧 측근정치의 구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반원개혁이 성공한 뒤에는 공민왕의 측근세력이 정치세력으로서의 성격을 상실하면서 점차 와해되어갔고, 이후 고려의 정치는 기존의 권문세족과 이 시기에 새로이 성장한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가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전개되었다. 권문세족과 부원세력간의 정치적 대립은 충목왕이 죽자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노출되었는데, 이후 부원세력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여기에 충정왕의 외척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국왕 측근세력이 형성되어 서로 대립함으로써 충정왕대의 정치는 혼란을 거듭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은 이전에 권문세족이 지지했던 공민왕을 고려국왕에 봉하였는데 이것은 고려의 정치를 안정시켜 고려에 대한 간섭을 확고히 하려는 목적에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원의 이러한 의도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공민왕의 즉위는 그의 추대를 주장했던 권문세족의 정치적 입장을 강화시켜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권문세족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던 이제현이 부원세력과 결탁해 있던 충혜왕의 측근세력을 제거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민왕을 원에서부터 시종하였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공민왕의 측근세력을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권문세족과 국왕 측근세력 사이에는 적지않은 마찰이 일어났다.
공민왕은 권문세족과 국왕 측근세력을 모두 왕권의 기반으로 흡수하려는 태도를 취하였다. 이는 공민왕이 자신의 즉위과정에서 권문세족의 주장이 크게 반영되었다는 점과 국왕 측근세력의 현실적인 존재를 동시에 인정하면서 이 두 세력을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하여 당면의 과제인 부원세력의 척결에 주력하였기 때문이었다.
공민왕 즉위 이후에도 원의 간섭은 여전하였고, 부원세력 역시 건재하였다. 공민왕은 부원세력들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공민왕을 중심으로 하는 고려의 정치세력과 부원세력 사이의 긴장관계가 고조되었고, 공민왕 측근세력의 일부가 난을 일으켜 부원세력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난이 실패함으로써 오히려 부원세력이 강화되는 겨과를 초래하였으며, 때마침 원에서 기황후의 아들이 황태자에 봉해지자 이러한 추세는 더욱 심해졌다. 이를 계기로 부원세력의 정치적 지위가 신장되었다. 따라서 공민왕을 비롯한 고려의 정치세력은 반원개혁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되었으며, 당시 중국에서 몽고족의 지배력이 약화됨으로써 그 객관적인 조건이 성숙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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