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여왕마고`에 나타난 프랑스의 종교정책

등록일 2003.06.23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3,500원

목차

♣들어가는 말
♣<여왕 마고>에 나타난 프랑스의 종교정책
♣맺음말

본문내용

♣들어가는 말

16C의 프랑스는 신,구교간 종교대립으로 인한 살륙이 전 대륙을 뒤덮고 있었다. <여왕 마고>는 이러한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당시 프랑스 왕실의 암투를 그려낸 작품이다. 마르그리트라는 한 여인의 삶이 중심 축이기는 하지만, 종교전쟁 당시의 왕실, 민중들의 피폐한 삶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종교라는 것이 인간의 삶을 좀더 풍요롭고 가치있게 해주는 중요한 기제로의 역할은 도외시한채,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서로를 무자비하게 죽이는 요인이 된 것이 상당히 아이러니컬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상 종교가 민족살상의 원인이 된 사례는 많지 않다. 하지만 유럽등지에서는 수백년 동안 종교 하나 때문에 전쟁을 할 정도로 중요 화두가 되어왔다. 따라서 그들은 민족 화합, 경우에 따라서는 왕의 통치 수단을 위해서 다양한 종교 정책을 펼쳐왔다. 이에 小稿에서는 <여왕 마고>에 나타난 16C 프랑스의 종교전쟁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 및 종교정책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여왕 마고>에 나타난 프랑스의 종교정책

1559년 앙리 2세가 사고로 사망한 후 1598년 낭트 칙령이 나올 때까지 약 40년은 프랑스의 역사상 가장 극적인 기간이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전쟁을 치루면서 격렬히 대치하고 있던 카톨릭과 신교도들은 종교적인 동시에 정치, 경제, 사회적 성격을 지닌 이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가장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앙리 2세 치세에 칼비니즘이 발달하고 수많은 귀족이 개종함으로써 1559년 왕국의 평화와 통일성은 직접적 위협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사고 방식으로는 한 국가 내에는 오직 하나의 종교, 그것도 군주의 종교만 존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1555년 독일에서 승리를 거두고, 카톨릭 국가와 프로테스탄트 국가가 제국 내에 공존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원칙이었다. 군주의 종교와 다른 것을 신봉하는 소수는 국가의 통일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어 마땅히 제거되어야 했다. 설사 소수가 어느 날 다수가 될 정도로 아주 강력하고 확실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적을 제거하기를 기다리면서 저항해야 할 것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16세기 후반기의 프랑스를 분열시킨 갈등이 얼마나 끈질기게 지속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소란스러운 군대에 의해서 빠른 속도로 잠잠해진 몇몇 사람들의 외진 목소리를 제외하고, 각 진영은 1561년 9월 포아시의 대화가 실패함으로써 양측의 화해란 불가능하다는 점이 확실해진 이후 적을 제거하는 이외의 다른 목적이나 해결책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장 카르팡티에 외 공저. 주별철 역. <프랑스인의 역사>, 도서출판 소나무, 1987
페리 앤더슨 저. 김현일 외 공역. <절대주의 국가의 역사>, 도서출판 소나무, 1996
앙드레 모로아 저. 신용석 역. <프랑스사>, 홍성사, 1980
왈라스 클리퍼트 퍼거슨 저. 이연규 외 공역.<서양 근세사>, 집문당, 1989
민석홍 저.<서양사개론>, 삼영사. 1996
박용규 저. <근대교회사>, 총신대학출판부.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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