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1920년대 민족해방운동

등록일 2003.06.23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서론
2.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분화
3. 사회주의사상과 조선공산당
4.결론

본문내용

1. 서론

1919년 3·1운동부터 1920년을 분기점으로 하여 일제의 조선지배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정치적으로는 1910년대의 무단적인 지배정책이 3·1운동으로 인해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통치방식의 새로운 전환이 불가피하였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일제는 제1차세계대전으로 엄청난 전시 초과이윤을 얻었지만, 1920년 공황으로 입은 경제손실을 식민지로 떠넘기려 하였다. 곧 산미증식계획의 실시와 회사령 철폐를 통해 일본자본을 진출시키고 조선경제의 수탈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제는 1910년대보다 안정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하여야 했다. 그것은 조선민중의 민족해방투쟁이 무단정치의 탄압하에서 오히려 강화되고 광범위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제는 1920년대에 소위 '문화정치'를 내세워 1910년대부터 형성시켜온 식민지체제의 궤도 위에서 발전을 표방하면서 유화정책을 실시하고 민족의 붕괴, 민족해방운동의 분열과 개량화를 기도하였다. 이러한 문화정치시기의 민족해방운동이 어떻게 분열되고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사상의 전파와 1925년 창립된 조선공산당에 대해 살펴보자.



2.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분화

3·1운동이후 민족운동에는 절대독립론· 독립전쟁론이 지속되는 한편, 독립준비론· 실력양성론· 외교독립론 등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일제의 조선 강점 이후 의병전쟁의 계열을 계승하며 만주· 연해주 등지에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해 가면서 무력항쟁을 계승하던 계열들은 절대독립론· 독립전쟁론을 견지하였다. 이들은 청원운동이나 타협주의를 가지고서는 독립이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만주에서의 군소 독립운동단체들은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로 통합되어 만주의 조선이민을 기반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독립전쟁기지를 하층 발전시켰다.
한편 3·1운동에서 선언했던 독립의지를 구체적인 정부형태로 결실을 맺은 상해임시정부는 연통제(聯通制)의 실시와 외교활동에 주력하였다. 연통제는 상해에 위치한 임시정부가 국내 및 만주지방과의 연락을 취하기 위하여 만든 연락망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의 철저한 감시와 탄압 때문에 전국적으로 붕괴되었다. 임시정부가 국토와 민족의 기반이 없는 상해에 설치하였다는 사실부터도 독립전쟁론에 입각한 정부라기보다는 외교독립론 중심의 정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임시정부의 외교는 파리강화회의나 태평양회의, 국제연맹으로부터 독립을 보장받는 데에 일차적일 목표를 두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해지자 각국의 정부·민간지도자들을 상대로 선전외교를 폈으나 사실상 실패하고 말았다.

참고 자료

강만길, <<(고쳐쓴)한국근대사>>, 창작과비평사, 1994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강의>>, 한울, 1995
한국근현대사연구회, <<한국독립운동사강의>>, 한울, 1998
역사학연구소, <<강좌 한국근현대사>>, 풀빛,2001
박찬승, <1920년대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동향><<한국사49>>, 국사편찬위원회, 2001
전명혁, <조선공산당의 성립과 활동><<한국사49>>, 국사편찬위원회, 2001
임대식, <사회주의운동과 조선공산당><<한국사15>>, 한길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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