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철학] 장자의 道의 철학

등록일 2003.06.22 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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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 장자의 생애와 시대배경

2. 본 문
- 장자의 인간 이해
- 도(道)의 철학
- 자연회귀의 무위(無爲)의 정치사상

3. 맺음말

본문내용

∏ 장자의 생애와 시대배경
장자는 이름이 주(周)이다.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중국 고대의 철인이다(그 생몰 연도는 불분명하지만, 대략 기원전 370년까지 살았다고 추정된다). 공자보다는 약 1세기 반 정도 늦고, 맹자와는 거의 같은 시대에 살았다. 그리고 서양과 비교하면,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거의 같은 시대에 살았고, 에피쿠로스나 제논보다는 약간 선배다. 장주의 전기에 대한 상세한 자료는 오늘날 남아있지 않다. 태어난 곳이 송(宋)나라 몽지(蒙地 :하남성河南城 귀덕부歸德府 상구현商邱縣 부근)라는 것, 결혼을 했었다는 사실과 몇 명의 제자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같은 송나라 출신이면서 위(魏)나라 재상을 지냈던 혜시(惠施)와 친분이 있었다는 점은 대체로 확실하다. 그러나 그가 어떤 성장과정이나 경력,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생활을 보냈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장주의 전기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는 기원전 1세기, 장주 사후 약 200년 뒤에 쓰여진『사기(史記)』의 「장주열전(莊周列傳)」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모두 합쳐 235글자 정도에 불과하여 너무 간략할 뿐만 아니라, 그 대부분이 저서와 사상의 소개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그 속에 전기적인 기술이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 밖에 없다. 즉 그는 위나라 혜왕(惠王) 또는 제(齊)나라 선왕(宣王)과 동시대 사람으로서, 일찍이 향리에서 칠원리(漆園吏 :칠원은 옻나무를 심은 밭이다)를 지냈고, 초(楚)나라 위왕(威王)의 초빙을 거부했으며, 혼자 융ㅎ자적한 삶을 즐겼다고 한다.
『사기』의 그런 기술을 보충할 전기적인 자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외편≫이나 ≪잡편≫중에 보이는 장주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설화가 그것이다. 예컨대 그의 부인이 죽었을 때, 그 주검 앞에서 쟁반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지락(至樂)」), 그리고 자신의 임종을 맞이하여 자기의 시체를 산야에 버리도록 유언했다는 사실(「열어구(列禦寇)」), 또한 그를 재상으로 맞으려 했던 왕후에게 "하늘에 제사지낼 때 희생의 소가 되느니,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 속에서 자유를 노래하는 한 마리의 돼지가 되고 싶다"(「열어구」)고 대답했다는 내용, 그리고 자기의 영달을 자랑하는 같은 고향 사람에게 "세속적인 영달 따위는 권력자의 똥구멍 속의 치질을 핥는 것과 같은 정신적인 굴욕에서 얻어진다"(「열어구」)고 대답했다는 내용이 잔존한다.
그러나 그런 내용들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가늠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 설화를 통하여 본다면, 장주가 무척 가난했다는 것, 그리고 그 가난 속에서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는 점은 유추할 수 있다. 그의 생활의 구체적인 측면은 매우 애매하다.
장자의 책, 이른바『장자』라고 전해지는 책은 4세기 서진(西晉)시대 곽상(郭象)이 정리한 33편으로 ≪내편≫ 7편과 ≪외편≫ 15편, 그리고 ≪잡편≫ 1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분류는 곽상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그 이전에는 5<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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