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age report) 한국 정치사 주요사건
- 최초 등록일
- 2014.07.16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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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부산정치파동
2. 우의마의
3. 여촌야도
4. 진보당사건
5. 사사오입개헌
6. 참의원
7. 한국에서 실시한 국민투표 5가지
8. 한국에서 계엄령 선포한 사건 6가지
본문내용
Ⅰ 釜山政治波動의 배경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와 전쟁 중 발생한 국민방위군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등으로 국회내에서 야당세가 강화되어가고 이승만에 대한 지지가 점차 저하되는 상황하에서 국회에서의 간접선거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 될 가능성은 희박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키고 개인적 권한을 강화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이승만은 자신의 권력기반이 될 정당을 창설하고 대통령의 직접선출을 위한 개헌을 시도하게 되는데, 1952년 2월부터 7월까지 일어난 이러한 일련의 정치적 과정을 ‘부산정치파동’이라고 일컫는다.
<중 략>
1987년 국민투표는 위와 같은 계업이나 긴급조치 등 비상시기가 아닌 상황에서 실시된 것이었다. 앞의 표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상적 상황하에서 실시된 1962년, 1972년, 1975년, 1980년에는 찬성률이 78.8%, 91.5%, 78%, 91.6%로 높게 나타나는데 특히 비상적 조치가 해제되지 않은 가운데 실시된 1972년에는 91.5%의 높은 찬성률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당시 비교적 평상적인 투표상황을 보여준 1969년의 찬성률은 가장 낮게 나타난다. 따라서 통제된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면 비교적 국민의 의사가 바르게 그 결과에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이정석은「분단과 반민주로 본 한국정치 이야기 (상)」에서 ‘3선 개헌안’ 국민투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박정희가 큰소리를 치는 배경에는.... 국민투표는 언제나 통과된다는 자신감 등이었다. 즉 자신이 또 대통령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것을 주권자인 국민의 의중과 투표결과로 가리자는 것이었지만, 후진국에 있어서 국민투표란 어리석은 백성의 힘을 업는 정치도구적 원리로도 작용한다(중략)” 우리는 위 사례를 통해 국민투표가 독재권력의 정당화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음을 지켜보았고, 공정한 국민투표를 통해서만이 정권의 정통성이 확보되고 이를 밑받침하여 안정과 발전이 기약될 수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