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현대사] 독소전쟁사 (2차 세계대전)
- 최초 등록일
- 2003.06.21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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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소련-핀란드 전쟁]
[독일의 소련 침공]
[독일군의 초기 승리]
[히틀러의 계획 변경]
[모스크바 함락 시도]
[소련의 반격]
[1942년 여름의 러시아 전선]
[코카서스 방면의 독일군 진격]
[스탈린그라드의 소련군 배치]
[스탈린그라드의 소련군 승리]
[쿠르스크 전투]
[소련군 공세로 국면 전환]
[독일의 결전 태세]
[소련의 백러시아 탈환]
[바르샤바 봉기]
[동부 독일 동맹국의 항복]
[유럽의 최후 결전]
[독일의 항복]
본문내용
[소련-핀란드 전쟁]
두 달 간의 외교 분쟁 끝에 1939년 11월 30일 소련은 핀란드에 선전포고했다. 스탈린은 자신이 계획한 전격작전에 집착했으나 그의 기대는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만네르하임(Carl.G.Mannerheim) 원수가 지휘하는 핀란드군은 동계 전투에 능숙했다. 그러나 소련군은 붉은 군대 고급 지휘관에 대한 정치적 숙청이 부분적 이유가 되어 지휘상의 오류를 자주 범했다. 적어도 5대 1의 병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핀란드군은 영토를 지키면서 다음해까지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핀란드에 대한 공격은 소련에 대한 부정적 국제 여론을 불러 일으켰으며 영국과 프랑스에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그들은 독일의 주요 철광원인 노르웨이 북부의 키루나(Kiruna)광산을 오랫동안 주시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철광석이 발트해로 운송되고 겨울에는 부동항인 노르웨이의 나르빅(Narvic)항으로 옮겨져 공해상을 통해 독일로 수송되었다. 또한 나르빅 나르빅-키루나 철도는 동쪽에서 핀란드 철도와 연결되었다. 결과적으로 표면적으로 핀란드를 돕기 위해 파견된 영불 연합군은 자동적으로 나르빅과 키루나를 점령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협조였는데, 두 나라는 이를 거절했다. 독일의 해군 사령관 라에다(Raedar)제독은 대서양 연안의 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히틀러에게 노르웨이를 침공할 것을 제의했으나 히틀러는 날씨와 벨기에의 침략 계획 사전 감지 때문에 저지 국가들과 프랑스에 대한 공격을 불명확하게 연기한 1940년 1월 하순까지 이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내린 첫번째 결론은 나르빅에서 오슬로에 이르는 8개 지점에 대한 동시 상륙 작전으로 노르웨이를 공략한다는 것이었다. 병력이 군함으로 수송될 때 영국 해군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떠문에 작전은 북극권의 긴 밤에 실행되어야만 했다. 군사적 태도를 취하지 않은 덴마크도 노르웨이로부터 가까운 비행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편의적으로 작전 대상에 포함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