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한국역사와문화

등록일 2003.06.21 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많은도움되시길...

목차

Ⅰ. 서론

Ⅱ. 신라 하대 사회상과 고려의 개창

Ⅲ. 신라말 고려초 사회제세력
1. 신라 하대의 지방세력(호족)
2. 6두품 귀족

Ⅳ. 선종사상
1.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의 차이점
2. 선종의 성격

Ⅴ. 결론

본문내용

신라 중대 마지막 왕인 혜공왕을 김양상이 살해하면서 자신이 왕이 된다. 이것이 하대의 시작이다. 그런데 혜공왕은 무열계 진골(김춘추 후손)이고 김양상(선덕왕)은 내물계 성골(내물왕 후손)이다. 내물계가 무열계를 죽이고 왕이 되니 그 다음에 무열계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서로가 죽고 죽이는 왕위쟁탈전이 벌어졌다. 당연히 왕권은 약해지고 이 틈에 중앙귀족들도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향락과 사치가 만연했다. 중앙정부가 이 모양이니 지방에 대한 통제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틈을 이용하여 지방의 호족세력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자기 지역에서 반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한다. 이렇게 되면 죽어나는 것은 농민뿐이었다. 이러한 중앙의 통치력 약화, 지방의 호족세력들이 등장으로, 농민들의 반란이 수반되었던 것이다. 원래 농민들은 훨씬 전부터 과중한 조세의 부담과 가혹한 역의 징발 때문에 이미 신라의 전성시대로부터 유망의 경향이 있었던 것인데, 그들은 또 귀족 사회의 퇴폐적인 향락생활과 국가기구의 해이로 말미암은 부담의 가중에 시달려야 하였다. 농민은 중앙정부로부터 세금을 뜯기고 호족에게도 이중 삼중으로 착취를 당하기 때문이다. 이들 압박에 시달린 농민들은 유민이 되어 사방으로 흘러 다니거나 세력 있는 귀족들의 장원에서 보호를 받으며 그들의 사병이나 노예가 되기도 하고 무리를 지어서 도적이 되어 질서를 교란시키기도 하였다. 이 농민 반란군을 초적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지배층에서의 각종 조세의 부담은 신라를 멸망의 길로 전도시켰으며 각종 반란으로 인하여 후삼국이 성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허흥식, 고려불교사연구, 일조각, 1989
추만호, 라말려초 선종사상사연구, 이론과 실천, 1992.
추만호, 신라하대 사상계의 동향, 한길사, 1991
추만호, 나말려초 선종사 이해의 방향, 한국역사연구회 회보, 1989,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나말려초의 호족과 사회변동 연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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