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역사] 순조대의 정치․사회사상과 괘서

등록일 2003.06.19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서론

본론
`왕권상실의 시대
1.순조의 생애
2.순조시대의정치
3.세도정치시기
`순조조 민의 동향과 괘서
1.괘서사건의 발생현황
2.순조조 괘서사건의 성격과 특징
`순조조의 사회상
1.홍경래의난

본문내용

순조시대의 정치
①.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시기
정조를 뒤이은 순조가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정순왕후가 전례에 따라 수렴청정을 했다. 그런데 3년의 수렴청정 기간동안 정순왕후는 심환지가 이Rm는 노론 벽파와 함께 정조가 재위시절 일구어 놓은 각종 개혁정책들을 파괴하는 한편, 정조를 따랐던 인사들을 철저하게 제거하였다.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 김한구의 딸로 1795년 15세의 나이에 왕비로 책봉되어 66세의 정조와 가례를 올린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정조의 할머니인 셈인데, 문제는 그녀가 궁궐로 들어온 후로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대리 청정 반대 운동에도 앞장서는 등 정조와 갈등을 조장해나갔었다는 것이다. 특히 정조가 국왕의 지위에 오른 후 외척 제거의 일환으로 노론 계열의 정순왕후 집안 사람들을 제거한 후에는 정조를 그야말로 원수 대하듯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순왕후가 수렴 청정을 하게 되었으니 그녀로서는 과거에 정조에게 당했던 일에 대한 복수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가 가장먼저 추진한 일은 정조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1800년 10월 정조의 국장이 끝나자마자 이들은 노론 시파의 서유린 형제를 사도세자 추존 문제에 동의 했다는 이유로 정계에서 쫓아냈다. 또한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과 홍봉한의 아들이자 혜경궁 홍씨의 동생인 홍낙임등을 역모 혐의로 처형하였다.
1801년에는 천주교 신자 300명을 숙청한 신유박해를 일으키면서 기호 남인중 좌파세력을 몰아냈다. 이들은 모두 정조 연간에 개혁정치를 이끌었던 사람들로, 이가운데 이가환, 권철신, 홍낙민 등은 죽음을 당하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한편 북학파의 박제가는 심환지에게 미운 털이 박혀 귀향길에 올랐다. 서자 출신이면서도 버릇없이 사대부 흉내를 내고 다닌다는 것이 유배에 처해진 이유였다.
다음으로 정순왕후와 벽파가 시도한 것은 장용영 혁파였다. 장용영은 정조가 수원에 화성을 축조하면서 이를 유지할 군사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새로 조성한 군대였다. 그런데 이 장용영을 시파계열인 김조순이 장악하고 있었고 벽파는 이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벽파는 장용영 유지에 필요한 재정적 문제를 이유로 이를 축소시킨 후 1802년에는 이를 아예 폐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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