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견학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4.07.01
- 최종 저작일
- 20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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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견학장소
2. 견학날짜
3. 작성자
4. 조사내용
본문내용
경주는 992년간 신라의 수도였으며, 경주의 역사는 곧 신라의 역사라고도 합니다.
신라천년 고도(古都)로서 찬란한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민족문화의 발상지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문화유산의 보고로서 세계적인 역사문화 도시 ,해양관광 휴양도시라고 할 수 있다.
신라는 시조 박혁거세가 기원전 57년에 지금의 경주를 중심으로 하여 세운 나라로 7세기 태종무열왕때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켜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형성하였으며, 935년에 고려태조 왕건에게 항복함으로써 멸망의 길을 걸었다.
<중 략>
국립경주박물관은 광복 직후인 1945년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출범하였으며, 1975년 큰 획을 긋게 된다. 현재 위치인 인왕동에 건물을 새로 짓고 박물관 전체를 옮긴 것입니다. 당시 동부동에서 인왕동으로의 박물관 이전은 경주에서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었는데, 특히 성덕대왕신종의 이전은 많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 행사로 유명하다. 1975년 당시에는 본관(지금의 고고관)과 별관(지금의 특별전시관) 그리고 성덕대왕신종을 위한 종각이 지어졌다. 설계자는 이희태(1925~1981)이시다. 외부에 기둥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운 누각 형태의 본관은 경복궁의 경회루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과 옥외 전시장이 있었다. 나는 신라역사관에서 많은 유물들과 그 시대에 선조들의 문화들을 볼 수 있었다.
<중 략>
『삼국사기』에는 안압지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궁 안의 못'으로만 기록되었다. 1980년대‘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본래 이름은 ‘달이 비치는 연못’이란 뜻의‘월지'라고 불렀다.
이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묵객들이 연못을 보며‘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고 그 때부터 기러기 '안'자와 오리 '압'자를 써서 ‘안압지’로 불리게 되었다.
안압지를 볼 때 주목할 만한 것은,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총 둘레 1000m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가장자리에 굴곡이 많아 어느 곳에서 보아도 연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