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테헤란. 얄타. 포츠담 회담

등록일 2003.06.18 한글 (hwp) | 1페이지 | 가격 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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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카이로 회담은 1943년 11월23일에서 27일 까지 루즈벨트, 처질, 장제스 연합국 수뇌가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열었던 회담이다. 대일전에서의 상호협력과 일본의 영토 문제에 대한 연합국의 기본 방침을 결정 하였다. 또한 한국에 관한 특별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데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한국을 자유독립 국가로 만들기로 결의 한다.”라고 명시해 한일합방이후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 하였다. 이 회담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뒤에 연합국이 일본의 영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방침을 처음으로 천명한 데에 그 의의가 크다.
같은해 11월28일에서 12월 1일 까지 한국의 신탁통치안이 재론된 루즈벨트, 처질, 스탈린 사이의 3국 수뇌 회담이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리었다.
이 회담에서는 소련의 요구사항이 노골화 되었다. 연합국 측은 1944년 5월에는 반드시 대대저긴 노르망디 상륙을 이행한다는 약속을 하였고, 특히 소련외교가 중심목표로 삼고 있었던 “폴란드를 서쪽으로 밀어내는 일”에 대한 연합국 측의 암묵적인 도의를 얻어냈다. 이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독일에 대한 작전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결국 1944년 5월 북프랑스 상륙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하고 작전수행을 위한 총 참전의사를 밝혔으며, 다시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에 대한 원조문제도 합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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