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칭의 시
- 최초 등록일
- 2003.06.18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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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이칭은 주로 민족주의적이고 민중 지향적인 작품으로 이루어진 시집을 30여권 출판했고, 문화와 관련된 많은 공직을 맡았지만, 1957년에 공식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 후 아이칭은 헤이룽장성[黑龍江省]과 신장성[新疆省]에 있는 강제노동수용소에 억류되어, 21년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1978년 4월 복권되어 다시 작가활동을 시작하였다. 복권 후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으로 선임되는 등 편안한 말년을 보내는 듯 보였으나 1996년 5월 베이징의 집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시는 진(秦)나라의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농민봉기를 간접적으로 현실에 비유하면서 노래한 아이칭의 첫 장편 서사시시인 '구백사람(九百個)'이다. 그런데 왜 하필 비유대상이 진시황이었을까? 중국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진시황이 얼마나 잔인하고 강압적인 폭군이었는지 기억한다. 물론 업적 면에서는 칭송할 점이 있지만 불로장생을 꿈꾸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아방궁과 시황릉을 세우고, 분서갱유를 일으킨 유례 없는 독재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당시 진시황과 그의 탐관오리, 대상인, 토호들이 백성들에게 자행했던 강한 군율들은 현재의 탐관오리나 자산계급들이 민중에 가하는 착취와 속박으로 볼 수 있다. 아이칭은 이런 진나라와 비유를 함으로서 현실의 비참함을 말하고 진승과 오광이 그러하였듯이 우리도 일어나야 한다는(공산주의를 따라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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