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 사군자에 관하여

등록일 2003.06.17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제 1장 서 론

제 2장 각 인물들의 일화와 토론내용
제 1절 맹산군의 일화와 토론내용

제 2절 평원군의 일화와 토론내용
제 3절 신릉군의 일화와 토론내용
제 4절 춘신군의 일화와 토론내용

제 3장 결 론
제 1절 결론 및 의견

본문내용

군자란 매난국죽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전국시대의 네사람의 덕망을 높이 받들기 위해 부른 이름이다.
맹상군의 성명은 전문이다. 맹상군은 시호 또는 봉호라고도 한다. 선왕의 서제인 아버지의 뒤를 이은 다음,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후하게 대접하여 그 명성과 실력을 과시하였다. 진나라 소양왕의 초빙으로 재상이 되었으나 의심을 받아 살해위기에 처했을 때 좀도둑질과 닭울음소리를 잘 내는 식객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것이 ■계명구도■의 고사이다. 후일 제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을 역임하고 독립하여 제후가 되었다
평원군은 성명 조승이다. 평원에 봉하여졌으므로 평원군이라 하였다. 조나라 혜문왕의 동생이며, 맹상군 ■춘신군 ■신릉군등과 함께 ■사군■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혜문왕 ■효성왕시대(BC 298~BC 245)에 3차례에 걸쳐 재상이 되었으며, 현명하고 붙임성이 있어 식객 3,000명을 먹였다고 한다.
신릉군은 위공자라고도 불리며 중국 전국 시대 말기 위나라의 정치가이다. 문하에 식객 3,000명을 두었었다.
춘신군은 전국시대 4군 중 한 사람으로 성 황(黃), 이름 헐(歇)이다. 완이 즉위하자 헐은 재상에 올라 춘신군이라 칭했으며, 그 후 20여 년 간 권세를 휘두르며, 내치 ■외교로 강적 진과 대항했다. 식객 3,000명을 모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문화보호자로서 그가 살아 있을 때 순자도 초나라에 갔었다. 효열왕이 죽자, 권신 이원에 의해 그 일족과 함께 살해되었다.
이 네명의 일화를 알아보고 그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참고 자료

[1] 사마천, 정범진 옮김, "사기열전", 1999. 10
[2] http://giant.x-y.net, 사마천의 사기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