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화] 양무운동
- 최초 등록일
- 2003.06.17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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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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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편전쟁은 서양 열강의 세력 확대인 동시에 중국 스스로 ‘중화 사상’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근대 중국에서 처음으로 서양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임칙서의 뒤를 이어 위원이 <해국도지>를 편찬한다. 이 책은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각 나라의 역사·지리·정치부터 대포와 선박 제조법까지 체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주도적으로 서양을 배우자고 하였으며, 명나라 말 이후 서구의 해상 세력이 흥기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해상방위론을 제기하였다.
아편전쟁 같은 격렬한 변화를 통해 근대화의 길을 모색하게 된 중국은 선진 지식인을 주축으로 함풍 11년(1861)부터 갑오전쟁이 실패한 광서 20년(1894)까지 자강 운동이 일어난다. 자강 운동의 핵심은 ‘중국학을 원리로 삼고, 서양학을 실제로 삼는다’라는 짧은 구절 속에 담겨 있다. 양무파는 서방은 실제적인 것, 응용적인 것, 기물 등에서는 중국보다 앞서지만, 근본적인 사상·도덕·정치와 법 제도에 있어서는 중국과 함게 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역경>의 "형체를 초월한 것을 ‘도’라 하고 형체의 범위에 있는 것을 ‘기’라고 한다."는 견해를 차용하여, ‘중학’은 근본적인 것이고, ‘서학’은 지엽적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운동의 기본 정신은 서양 사람들의 기술과 제도를 모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양무운동’이라고도 불었다.
참고 자료
1. 중국 문화사 - 김원중 지음, 을유문화사 : 318p∼311p
2. 중국 오천년사 - 김영진 역편, 대광서림 : 482p∼48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