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 석주의 잡체시

등록일 2003.06.17 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석주 권필의 잡체시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잡체시의 창작배경과 잡체시에 대한 인식
2.. 잡체시의 범주
3. 석주의 잡체시 고찰
1) 禽言體
2) 玉連環
3) 自一言至十
4) 回文體
5) 數詩· 八音歌· 建除體· 藥名體 기타
4. 석주의 변이형태 한시 창작의 저변

Ⅲ. 결 론

본문내용

Ⅰ. 서 론

석주 권필은 양반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형들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시를 짓고, 정철을 비롯한 그 시대의 문인들 밑에서 창작적 재능을 키웠다. 석주가 생존했던 시기는 宣祖 年間과 光海君 在位 4년까지인데. 실로 이시기의 시문학계는 조선 전기의 대수롭지 못한데서 벗어나, 中宗이래 인종, 명종(1546년~1567년)대의 안정된 정치 사회적 배경아래 문단도 순탄하였다. 선조대에는 당파싸움과 외척의 정치개입 등으로 정계의 내분이 심화되었지만 앞시대의 문인들이 많이 남아있었고, 특출한 시인들이 많이 등장하여 詩壇은 전에 보지 못했던 성황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문단의 성황은 시풍의 대전환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때를 "穆陵盛際"라 했다. 석주는 목릉성제의 詩文이 왕성하던 때, 현실주의적 인간애로 그 시대의 사람들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고 대상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첨예한 문제들을 예리한 시각으로 간파하여 사실적, 풍자적으로 묘사하였던 것이다. 또 시를 언어의 가장 정채로운 것으로 보았으며, 시를 통하여 사물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을 추구하는 태도를 취하였으니, 그의 작품은 당대에 널리 膾炙되었다. 이처럼 석주는 한시가 융성했던 이 시기에서도 그 정점에 우뚝하게 자리잡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생애는 기구하였지만, 그의 시문에 대한 평은 당대와 후대에 걸쳐 한결같이 좋게 나타나 있다. 그는 44세의 길지 않은 삶을 사는 동안 격동하는 역사의 중심에 서서 시대의 모순에 맞서가며, 현실에 대한 불만을 시로써 표현하였는데, 죽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宮柳詩」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한「聞任茂叔削科」라는 외척을 풍자한 시 때문이었다.

참고 자료

정 민. 「목릉문단과 석주 권필」 태학사, 1999
정 민. 「한시미학산책」 솔출판사, 1996
문범두. 「석주 권필 문학의 연구」 국학자료원, 1996
박종원 외 공저. 「조선문학통사 1-3」 이회문화사, 1996
박충록. 「권필 작품집 2, 뜻이 있는 길」 1994
허권수. 「권필의 한시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석사논문」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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