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의 신분제도
- 최초 등록일
- 2014.06.20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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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양천제
2. 조선초기의 신분체제의 실상
가. 4분설
나. 양분설
3. 계급별 특징
가. 양반
1)양반의 개념
2)양반의 성립과정
3)양반의 특권
나. 중인
1)중인의 개념
2)중인의 성립과정
다. 양인
1)양인의 개념
2)양인의 신분적특성
3)양인의 존재양태
다. 천민
1)천민의 개념
2)노비의 존재양태
3)노비의 입역과 신공
4)노비의 신분적 성격
Ⅲ. 결론
본문내용
I. 서론
475년이란 긴 역사를 가진 고려가 멸망하고 1392년 조선이 세워졌다. 오랜기간 존속?榮 국가가 무너진 만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방대했고 이를 안정화하고자하는 조선은 고려의 멸망 요인을 찾고 수정해 좀 더 완벽한 체제를 만들고자 했다. 그들이 생각한 고려의 주요한 멸망 요인은 신분제의 혼란이었다. 신분제가 흔들리며 각 계층의 역할을 다 하지 못했고 결국 국가재정의 파탄, 사회의 불안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본론에서는 이를 위해 조선 사대부층이 법제화를 시행했던 양천제와 법제화된 신분제와 별도로 조선 전기에 신분 구분에 대한 두가지 학설, 그리고 조선이란 체제가 정착된 다음 본격적으로 분화된 4개의 계급의 특징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중 략>
(1) 공노비의 존재양태 공노비에는 각사노비, 내노비, 관노비, 역노비 등이 있었다. 이들은 상전인 소유주가 국가기관이나 왕실이었다. 다만 그들의 수가 당시 공식적으로 조선에서 집계한 350여만명의 조선 인구 전체의 1할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 사노비의 존재양태
사노비에는 크게 솔거노비와 외거노비가 있었다. 솔거노비와 외거노비의 구분의 지표를 혹자는 거주지에 있어서 노비의 주인집과의 결합 또는 분리의 여부라 주장하지만, 이보다는 토지의 소유와 경영의 측면, 즉 직접적 생산과정에서 노비가 차지하는 위치나 그 역할의 차이에서 구해야 하 것이다. 조선 초기에 사노비를 포함한 전체 노비의 인구가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성종 15년에 추쇄하지 못한 공노비가 10 여만 명이나 되었고 공사천인 중에 도망하여 숨어 있는 자가 무려 100만 명에 이르렀다. 즉 당시 사노비의 인구는 조선 초 전체 인구의 1/3에 달하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5 . 서울: 국사편찬위원회, 199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6 . 서울: 국사편찬위원회, 1998.
조선사회연구회. 조선사회이렇게본다 . 파주: 지식산업사, 2010.
한영우. 과거 출세의 사다리 1 . 파주:지식산업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