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운동사] 1930년대 항일무장 운동 단체 - 조선의용군 (조선의용대 성립, 화북으로 이동하는 과정과 화북지대에서의 활동, 전투부대 창설)
- 최초 등록일
- 2014.06.18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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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조선의용대 성립
2. 화북으로 이동하는 과정
3.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에서의 활동
4. 전ㆍ후기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5. 전투부대 창설
본문내용
조선의용대는 침략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와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국제 연대 투쟁과정에서 창설되었다. 민족혁명당은 1938년 7월 초 일본인 반전주의자 청산화부를 통하여 ‘국제의용군’ 조직 결성안을 중국군사위원회에 제출하였다. 하지만 한인들의 주장했던 건설될 대오의 명칭은 ‘조선의용군’과 책임자는 ‘사령’으로 할 것, 그리고 사령 밑에 참모부를 두며 군대의 규모는 연대급으로 할 것이 중국 측이 거부하고 반민반군의 성격을 갖는 대오로 주장하였다. 그래서 명칭은 ‘조선의용대’로 결정하고 그 책임자는 ‘대장’으로 확정지었으며 참모부는 두지 않도록 하였다. 이후 1938년 10월 10일 무한에서 정식으로 건립되었다.
2. 화북으로 이동하는 과정
의용대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 팔로군 지구로 북상하였다. 한쪽에서는 일찍부터 동북노선에 입각하여 화북 중공 지구로 진출하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민당 지구에서 2년 이상 활동하다가 북상하였다. 전자는 의용대 내의 과격파들이 먼저 화북지구로 북상한 것을 말하고, 후자는 온건파들이 1941년 7월 비밀리에 중공 지구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우선 과격파인 최창익 일파가 이동하게 된 이유는 ‘동북노선’과 연계되어 있는데 그들은 만주로 가서 만주 조선민중에 의거해, 그리고 만주 조선인 항일부대와 합세해 민족운동을 전개하자는 주장을 했다. 최창익 일파는 중공 지구로 이동하여 동북 진출을 모색하였다. 그들은 연안을 거쳐 동북 진출의 통로가 될 수 있는 팔로군 태항산 지구에 터를 잡고 조선인 항일 단체 조청을 결성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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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인 저, 『항일 무장 독립투쟁사 2』, 일원, 1999.
조지훈 저, 『한국민족운동사』, 나남출판, 1996.
와다 하루끼 저,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창작과비평사, 1992.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한국독립운동사사전』, 1996.
민족사 바로 찾기 국민회의, 『독립운동총서 4 독립군의 전투』, 민문고, 1995.